여기가 인터넷 문화 ‘성감대’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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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맹’ 탈출 원하십니까?…늦깎이 네티즌을 위한 ‘강력 추천’ 사이트
"할수만 있다면, 2030세대의 머리에 빨대라도 꽂고 쭉 빨아들여 버렸으면 좋겠다.” ‘노사모’ 활동에서 여중생 촛불 시위까지, 지난 한 해 동안 ‘행동하는 네티즌’이 일으킨 변화는 5060세대에게 너무나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사이버 테러니 인터넷 중독이니, 그저 요물인 줄로만 알았던 인터넷이 대통령까지 만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조간 신문과 9시 뉴스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개벽이 신세’(그룹에 동화하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뜻하는 사이버 폐인들의 용어)를 면하기 힘들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딴지일보>니 <오마이뉴스>니 <프레시안>이니 하는 인터넷 언론 사이트나 한번 둘러볼까? 오케이 거기까지. 아서라. 싱싱한 정보가 펄떡펄떡 뛰는 정보의 바다에서 고작 뉴스 사이트를 찾는다는 것은 잔칫집에 가서 짜장면으로 요기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침묵하는 다수’의 네티즌과 접속하기 위해서 들러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네티즌들의 사고를 알기 위해서 접속해야 할 곳은 바로 ‘버즈메이커’(소문의 발원지 혹은 전파 경로) 사이트들이다. 넷피니언(인터넷+오피니언) 리더들이 주로 찾는 이 사이트들이 바로 인터넷의 급소요, 팥소요, 정보의 바다에 뜬 보물섬이다. 이 사이트들에 접속하는 순간 비로소 당신은 ‘넷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버즈메이커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블로그’(웹+로그의 줄임말)로 1인 웹진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웹 저널리즘의 하나로 자리 잡아서 주요 언론사 사이트에서도 블로그를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제로보드’(다기능 게시판)로 이슈 게시판이다. 이들은 미디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미디어를 넘어서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운영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주로 의존하는 블로그의 대표적인 곳으로는 <스노우캣>을 꼽을 수 있다. 게으른 고양이를 소재로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만화 사이트에 접속하면 네티즌 사고 체계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 남들이 욕하건 말건 그저 게으르게 사는 스노우캣은 네티즌들에게 ‘귀차니즘’(게으름을 신봉하는 경향)을 전파했다. 사이트 운영자인 ‘귀차니스트’ 권윤주씨는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언론과 인터뷰도 하지 않는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귀차니즘’ ‘엽기 연애담’ 큰 인기



<스노우캣> 이후 웹 만화는 블로그의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블로그형 웹 만화 사이트는 <트라우마> <뻔쩜넷> <싸이미니넷> <마린블루스넷> <강플넷> 등인데, 이 사이트를 보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다. IT 기업 직장인들의 비애를 담은 <시니컬 카툰>도 벤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사소한 일 심각하게 생각하기’와 ‘심각한 일 사소하게 생각하기’가 공통된 특징인 블로그형 웹 만화 사이트에서 요즘 <스노우캣>의 아성을 위협하며 떠오르고 있는 곳은 <김풍넷>이다. ‘사이버 박재동’으로까지 불리는 사이트 운영자는 원래 디시인사이드 사이트에서 사이버 폐인의 행태를 만화로 표현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독립 사이트를 차린 이후 운영자는 다양한 장르로 표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웹 만화와 함께 연애담 블로그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 인터넷에서 연재되었던 연애담이 영화로 제작되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은 이런 글들이 네티즌의 정서에 부합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에는 헤어진 여자 친구 이야기를 연재하는 <솔로문>이 신세대 신파의 계보를 잇고 있다.



칼럼형 블로그도 인기다. 특히 서영석·공희준 등 대표적인 인터넷 스타 칼럼니스트가 포진한 <서프라이즈>는 얼마 전 합종연횡을 통해 인터넷 논객 시장을 평정했다. <서프라이즈>는 인터넷 뉴스 시장의 강자인 <오마이뉴스>와 함께 인터넷 언론을 이끌고 있다. 이들 ‘밤의 주필’들의 결집된 힘은 네티즌 사회에서 <조선일보>를 능가한다.



칼럼 사이트이지만 <서프라이즈>도 ‘진지한 얘기 가볍게 하기, 가벼운 얘기 진지하게 하기’라는 블로그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이들은 정치 현상을 대중 문화 현상에 대입해 설명하는 ‘공희준식 화법’으로 네티즌의 흥미를 붙들었다.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등 오프라인 논객들의 저널이 부진한 것에 비해 이 사이트는 ‘정치 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중 문화 칼럼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딴지일보> ‘딴따라 딴지’ 출신인 약쟁이(이용준)와 파토(원종우)가 만든 <최악의 딴따라상> 사이트는 ‘빠순이(팬클럽) 문화’를 정조준하며 ‘무뇌충(문희준)’에 대한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대중 가요 표절 논쟁으로 시끄러운 이 사이트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시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녹아 있다.






<얼리 어답터>와 같은 정보형 블로그 사이트도 네티즌의 관심사를 알기 위해 꼭 들러 보아야 하는 곳이다. 새로운 디지털 기기에 대한 사용 체험기가 주로 오르는 이 사이트에서는 신기술에 대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들의 흥미와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들은 연예인 스캔들보다 디지털 신기술 정보에 더 민감하다. 사이트 운영자 최문규 대표는 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제로보드의 대표적인 사이트는 <디시인사이드>이다. 조금 쇠퇴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디시인사이드>는 여전히 인터넷 무림의 지존이자 사이버 폐인계의 성소이다. 지난해 유행한 인터넷 문화는 이 사이트에서 발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욕설·비방 등 공격형 댓글문화에서 유머·재치 등 해학형 댓글문화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디시인사이드>를 이어 제로보드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베타뉴스>이다. 이곳은 ‘주객전도’ ‘동문서답’과 같은 해학형 댓글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애초 컴퓨터 하드웨어 뉴스를 주로 다루었던 이 사이트에는 연예계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기사보다 게시판에 오른 글들이 더 인기인데, 한 글에 달리는 댓글이 천 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신세대 성 문화 궁금하면 <팍시러브>로



<오르비7>의 게시판도 <디시인사이드>의 영광을 위협하고 있는 곳이다. 주로 수능 성적 상위 1% 학생들이 몰려 있는 이 사이트를 보면 차세대 엘리트들이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이 사이트를 둘러보면 요즘 대학생들이 왜 선배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굳이 선후배 간의 대물림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팍시러브>는 여성 네티즌의 사고를 파악하기 위해 가볼 만한 곳이다. 여성들의 <딴지일보>라 할 수 있는 이 사이트는 지난해 ‘나쁜 여자’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서로 추천 모텔 정보를 주고받고, 자위 기구를 공동 구매하고, 남성의 음모를 모으는 이들의 집단 행동은 신세대 성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최근 <젝시인러브>라는 유사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인터넷은 넓고 클릭할 곳은 많지만, 자 이제 일단 서핑은 끝이 났다. 사이트들을 둘러보는 동안 당신은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을 것이다. 바로 모든 사이트들이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 중독성은 어디에서 말미암는 것일까? 웃음이다. 웃음만이 이 모든 사이트들을 일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다. 웃음 코드를 알면 탤런트 신 구씨가 왜 ‘니들이 게맛을 알아’ 단 한 마디로 네티즌 스타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컷 웃었으면 이제 자율적인 심화 학습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심화 학습을 위해 권장할 만한 곳은 다음카페나 프리챌 커뮤니티를 이용한 커뮤니티 활동이다. 당신이 조금 학구적인 사람이라면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포럼을 추천한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네티즌이라 할 수 없다. 인터넷 메신저(실시간 채팅 창)를 이용해 2030세대와 실시간으로 접속해 있는 것도 ‘사고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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