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토목구조물’로 선정된 수원 화성 다시 보기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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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역사적 토목구조물’로 선정…축성 과정의 기록 온전히 남아
경기도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재 화성(華城). 흔히 ‘성곽’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도시 전체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6백 칸이 넘는 행궁과 수많은 도시 기반 시설, 생산 시설들이 길이 6km, 높이 5~6m에 달하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은 현대식 도심으로 개발되어 망루에 올라서야만 옛 도시의 규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수원 화성의 도시공학적 우수성이 지어진 지 2백년 만에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다. 최근 미국토목학회가 화성을 ‘2004년도의 역사적인 토목구조물(Historical Civil Engineering Landmark)’로 선정 발표한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 7년 만이다.
유네스코는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반면 미국토목공학회의 역사적 토목구조물 선정은 문화재적 가치뿐 아니라 기술적 가치를 함께 평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태식 한양대 산업경영대학원장은 “화성이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 유산일 뿐만 아니라 토목공학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한 유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미국토목학회는 1852년에 설립된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래된 공학 분야 학회로, 세계 각국의 토목 분야 연구자 13만3천명이 가입해 있는 세계적인 학술 조직이다.

미국토목학회 역사·문화위원회는 1967년 미국 뉴욕 북부에 있는 이리 운하를 첫 번째 역사적 토목구조물로 선정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년 한두 곳씩을 시상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선정된 역사적 토목구조물은 워싱턴 기념탑(1981년), 파나마 운하(1984년), 자유의여신상(1985년), 에펠 탑(1986년), 수에즈 운하(2003년) 등 모두 26개. 아시아에서는 1995년 필리핀의 ‘계단식 논’이 최초로 선정되었으며, 수원 화성이 두 번째다.

미국토목학회는 ‘중국·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平山城)으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함께 정치적·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는 등 10여 가지에 이르는 선정 이유를 밝혔다. 성곽의 형태와 축조 방법도 눈길을 끈 요소였다. 벽돌을 축성에 사용한 과감한 태도, 녹로거중기 등의 과학기기를 활용하고 용재를 규격화한 점, 공용화기(화포)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방어 구조 등이 화성의 독특한 특징으로 꼽혔다.
특히 미국토목학회 역사·문화위원회는 화성 축성과 관련한 온갖 기록들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화성은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32개월에 걸쳐 축성되었는데, 조선 왕조 22대 임금인 정조를 비롯해 설계자 정약용과 총감독자 채제공 등 축성을 책임진 이들의 이름뿐 아니라 공사의 논의 과정과 공문서, 임금의 의견과 명령 진행 과정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이름과 작업 내역, 노임까지 낱낱이 밝혀져 있다. 또한 화서문·창룡문·팔달문의 바깥쪽 벽에는 표면을 고운 정으로 다듬은 뒤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실명판’이 붙어 있다.

이런 모든 기록은 화성이 건설된 직후인 1801년 펴낸 열 권짜리 공사기록보고서 <화성성역의궤>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현재까지도 화성을 보수할 때 이 책을 참고한다고 하니 얼마나 자세하고 꼼꼼하게 기록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유네스코 관계자들은 화성의 많은 부분이 보수되었다는 점을 들어 처음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가 <화성성역의궤>를 본 뒤 등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수원 화성이 세계의 눈길을 끈 이유 중의 하나로 건설 시기를 드는 의견도 있다. 18세기 후반은 미국의 워싱턴 D.C.나 러시아의 모스크바 등 세계적인 도시들이 건설되던 때다. 이태식 원장은 “당시 건설된 세계의 어느 도시도 수원 화성만큼 과학적이고 계획적으로 건설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유럽에서 계획적인 신도시 혹은 전원 도시에 대한 구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며, 현실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화성 건설은 서양의 신도시 구상보다 최소한 100~1백50년 앞선 것이다.

토목공학자 이동욱 박사(한양대·토목환경공학과)에 따르면, 화성은 최근의 신도시 혹은 전원 도시 개념과 유사한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첫째, 수도 한양을 모도시로 해서 계획적으로 조성한 위성 도시였다. 둘째, 신도시의 번성을 위해 수도의 기능 일부를 이전했다. 셋째, 자족적인 도시로 키우려고 했다. 요즘 건설된 대부분의 국내외 신도시들이 잠만 자고 생활은 모도시에 가서 하는 일종의 ‘베드타운’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견주어 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계획 도시’ 화성이 얼마나 뛰어난 구조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제3회 아시아토목공학대회(8월16~19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패트 갤로웨이 미국토목학회 회장은 “수원 화성은 기록을 통해 축성 과정 전부를 보여주고 있으며, 신속한 축성과 참여한 백성들에게 노동의 대가로 임금이 지급된 것 등으로 볼 때 정조대왕 시대에 꽃핀 문화적·기술적 부흥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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