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영화제 ''만발''…영상의 새봄 열리려나
  • 宋 俊 기자 ()
  • 승인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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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계에 ‘별일’이 벌어졌다. 영화제 홍수가 난 것이다. 영화제(4월에만 3개 개최) 15개 가운데 국제 영화제가 10개가 넘고,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포함한 8개는 올해 새로 창설된 것들이다(96쪽 표 참조. 대종상영화제·금관청소년영화제·청룡영화상 등 종전 영화제와 시상식은 제외). 더욱이 최근 2~3년 사이에 신설된 영화제마다 관객이 입추의 여지 없이 모여들었다. 전례가 없는 영화제 붐이다. 도대체 갑작스런 영화제 바람은 어디서 불어온 것일까. 아직 한국 영화계가 영세성의 그늘에 가려 있는 한켠에서, 관객은 또 무슨 연유로 영화제를 찾아 쏟아져나온 것일까. 영화제 발흥의 실상을 살펴보고, 그 의의와 허실, 영향을 진단한다. <편집자>

일견 난립한 듯 보이는 영화제들의 면면은 의외로 다채롭다. 목적도 다양하고, 작품 성격도 뚜렷하다. 행사 취지를 살리려는 주최측의 차별화 전략도 적극적이다.

지난 4월17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여성문화예술기획 주최)는, 여성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영상을 통해 일상 속에 억눌린 여성의 초상을 살펴보고, 젊은 여성 인력을 발굴·지원한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주최측은, 여성 영화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과 호주 영화를 중심으로 13개국 영화 39편(단편·비디오 경선작 포함)을 한자리에 모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동성애 영화까지 다양

같은 장소(동숭아트홀)에서 연이어 열린 제2회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Q채널 주최)는 걸작 초청전(12개국 54편)과 국내 작품 공모전(상금 2천3백50만원)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초청전의 백미는 ‘라틴아메리카 컬렉션’이었다. 거장 산티아고 알바레즈(쿠바)와 신예 월터 필레(브라질) 초청 강연장은 관객의 열기로 가득찼다.

단편 영화 부문은 최근의 영화제 붐이 단순히 관객의 호기심에서 발생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 준다. 평균 20분 안팎에 불과한 한국 신예 작가의 단편 필름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은 호기심 이상의 영화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올 가을에 개최되는 서울단편영화제(삼성영상사업단 주최)가 지난 3년간 보여준 성과도 좋은 증거이다. 매회 3천만~4천만원씩 상금을 걸고 신인(한국 국적 소유자)의 작품을 공모하는데, 1년 이내에 제작한 영화로 다른 영화제(경쟁)에 출품되지 않은 ‘싱싱한 필름’만을 대상으로 한다.

서울단편영화제의 가장 큰 성과는 작가·관객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전년도 본선 진출자가 이듬해 입상하는 사례는 이제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자원봉사자의 작품이 이듬해 본선에 진출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이 영화제는 2006년께 오버하우젠 영화제(독일)와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프랑스) 같은 세계 최고의 단편 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

인디포럼(문화학교 서울 주최)은 독립·단편 영화 작가들의 잔치이다. 대표적인 독립 영화 작가들이 모여 행사를 직접 주최하고 진행한다. 독립영화·비디오 다큐멘터리·실험 애니메이션·해외 초청전 등이 열린다.

지난 3월 대학영화패연합이 주최한 제1회 대학영화축제는 ‘젊은 영화’의 잔치였다. 94~96년 제작한 단편 영화 15편을 상영한 연세대 장기원기념관은 몰려든 대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단편 영화제들이 작가 위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면, 4월30일부터 열리는 제1회 시민영화축제(경실련·한국영화제작가협회 공동 주최)는 전적으로 관객(시민)을 지향한다. 한국 영화만을 가지고, 서울에서 시작해 6월 말까지 전국 13개 지역을 순회할 예정인데, 각 지역 소외 계층에게까지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이다.

전국 순회 방식은 지난해 11월2일 제1회 인권영화제(인권운동사랑방 주최)가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인권 문제를 다룬 세계 각국의 영화 32편을 엄선하여 서울에서 제주까지 2개월간 대장정을 치른 이 영화제에는, 의식 있는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에는 9시간 30분짜리 대작 (클라우드 란츠만 감독·프랑스)를 비롯해 25편 안팎의 작품을 상영할 예정이다.

어린이를 위한 잔치도 있다. 서울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는 여름 방학 기간에 어린이 영화 1백25편으로 ‘영상 파티’를 마련한다. 시카고국제어린이영화제를 모델로 삼아 지난해 출범한 이 영화제는, 올해 팀 버튼 감독(미국)을 초청해 분위기를 북돋울 예정이다.

서울퀴어필름&비디오페스티벌은, 90년대 초 선댄스 영화제(미국) 토론토 영화제(캐나다) 베를린 영화제(독일) 등을 통해 새롭게 부상한 퀴어 필름 즉, 동성애를 주제로 성 정체성 문제를 천착한 영화 50~70편을 준비하고 있다. 퀴어 다큐멘터리와 한국 게이·레스비언 영화도 함께 소개하는 이 영화제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일환이다.

이다양한(특히 흔히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 영화제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여러 영화제의 거듭된 성공은, 그만큼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갈구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 그만큼 기존 영화계와 극장이 관객의 욕구에 걸맞는 영화들을 배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화(영화제) 수요의 급증은 이른바 ‘영상 세대’가 구매력을 갖게 되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컬러 텔레비전을 통해 어려서부터 화려한 영상을 호흡해온 세대가 어느덧 영화계의 분위기를 바꾸는 소비자로 성장한 것이다.

영화제 붐의 도화선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제공했다. ‘아시아 영화의 발견과 연대’를 표방하고 출범한 이 영화제는, 96년 10월 첫 행사에서 유료 관객 16만명을 끌어들였다. 작품 1백73편(29개국), 초청 인사 2백24명(27개국), 자원봉사자 3백28명, 예산 규모 20여 억원이라는 수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규모와 성공 정도를 시사한다. 이같은 성과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월12일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으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뒤떨어진 법규·제도 등이 걸림돌

부산국제영화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중심가에 몰려 있는 극장들, 해운대 해변을 둘러싼 호텔군, 관광 연계 효과, 서울과 별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영화 인력 등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동인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부산시의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지자체 스스로에게도 영화제 성공은 고무적인 사안이었다. 게다가 일시적이나마 지역 인력에 대한 고용 효과까지 파생했다. 영화제가 갖는 광고 효과도 한몫 했다. 팽배해 있는 기업들의 광고 욕구가 거액의 협찬을 가능케 했다.

3박자가 맞아 떨어진 부산국제영화제 대차대조표는 곧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획으로 연결되었다. 부천시는 부산보다 규모를 조금 작게(예산 15억원) 잡으면서, 약간 느슨한 형태의 판타스틱영화제를 겨냥했다.

일본 유바리국제모험판타스틱영화제가 좋은 본보기였다. 그렇지만 부천시는, 홋카이도의 폐탄광 도시 유바리가 영락해 가는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영화제를 댐·스키장·석탄박물관 등과 연계해 관광 산업의 일부로 육성시킨 경우와 여건이 다르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제 붐이 일면서 ‘영화제 공식’마저 생겨났다. 영화제 특성 별로 초청해 영화의 성격은 다르지만, 진행 프로그램이 닮아버린 것이다. 예컨대 ‘새 경향’ ‘세계의 창’ ‘회고전’ 따위 주제별 상영 프로그램을 4~5개 정하고, 외국 유명 인사 초청 강연·대화 시간을 마련하고, 특정 장르와 관련한 세미나·포럼을 준비하는 식이다. 이 편리한 공식에 편승하여 몇몇 영화제가 급조되는 폐단도 발생했다. 1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갖는 국제 영화제 관례에 비추어, 절반도 안되는 기간에 버젓이 영화제를 급조하는 초능력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사를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하고 갖가지 촌극을 빚는 일이 많았다. 공인을 받은 부산국제영화제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제 전문 인력이 전무하다시피한 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영화 평론가·학자 등과, 90년대 들어 귀국길에 오른 유학생들, 그리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동포 전문가들이 공백을 가까스로 메웠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진 삭제한 필름을 상영한 사례는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빚었다. 같은 해(96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시>가 문제의 영화였다. 국제 영화제 출품작은 해당국의 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이에 반한 <크래시>의 선례는 망령이 되어 나타났다. 서울여성영화제에서도 문체부와의 마찰을 피해 몇 작품을 자진 삭제하여 상영했다. 지난 4월18일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는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 개막 작품 <태평천국의 문>(리처드 가든 감독 외)이 압력에 의해 취소되어 버린 것이다. 이 문제는 개막 전날 심사위원들이 사퇴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같은 시행 착오와 관련하여, 최근의 영화제 특수가 일종의 거품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초창기에 흔히 발생하는 이상 열기에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무엇보다 영화제 특수를 살려가기에는 우리의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권위적·근시안적인 관련 부처의 안목, 흐름에 처진 법규와 제도, 전문가를 키워낼 교육 프로그램의 공백, 점차 유실되어 가는 자료를 발굴·보관하는 시스템의 빈곤, 시설·장비 등의 한계 따위가 영화계 내부의 반목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딜레마를 빚고 있는 것이다.

이 딜레마 속에서, 영화제 구성원들이 열정만으로 건져올린 문화 복지 차원의 성과들은 소중하다. 관객에게 다양한 영상 문화의 새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성과가 우선 꼽힌다. 행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부족하나마 준전문가 그룹이 꾸준히 형성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건강한 프로그램·인재 개발 급선무

그렇지만 이 성과들이 영화계의 생산 역량과 접목되지 못하고 겉도는 한, 영화제 특수는 거품으로 머무르기 십상이다. “관객의 욕구는 점차 높아가는데, 우리 영화제들의 수준은 점증하는 관객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만족시킬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라고 한국영화연구소 김혜준 실장은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인 것이다.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의 욕구가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귀납되지 못한다면, 영화제 자체도 관객의 외면을 받을 뿐더러 오히려 외국 영화의 입지만 넓혀놓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유럽 쪽 국제 영화제를 8년여 참관해온 황철민씨(영화 감독)는, 그 대안으로 장기적인 수용자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건강한 영화 운동을 일으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이를 수행할 인재를 모으는 입체적인 움직임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오버하우젠 영화제가 독일 영화 부흥에 기여한 과정이 그 좋은 예이다. 92년 제9회 영화제에서 ‘낡은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믿는다’라는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 단편영화제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높은 수준의 세미나들을 통해 관객에게 학습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이 움직임은 다시 ‘관객 결합 운동’으로 이어졌다. 소극장을 중심으로 관객과 작가가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영 포럼’ ‘아세날 체인’ 같은 소극장운동이 그것이다. 최근 한국에 불어닥친 영화제 열기는, 이같은 기초 다지기 작업과 맞물릴 때 비로소 제 힘을 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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