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그리운 여우> 펴낸 시인 안도현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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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리운 여우> 펴낸 안도현씨, 하찮은 풀벌레에서 ‘생명’ 발견
젊은 시인 안도현씨(36)가 최근에 펴낸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는 동식물도감이다. 그는 이번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에서 그 이전의 시세계와 결별했다. 일찍이 전봉준(첫 시집 제목이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다)에서 시작해 전교조 해직 교사 시절을 통과해 나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날 것의 자연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다. 리얼리즘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급격한 커브를 그린 것이다.

“자연을 만나고 나서 뒤늦게 철들었다”

캄캄했지만, 또 그만큼 희망도 단단했던 해직 교사 시절을 마감하고 그가 돌아간 교단은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서고등학교. 그곳에서 만난 ‘맨발의 청소년’들도 반가웠지만 무엇보다도 자연과 생명이 느꺼웠다. 길지 않은 그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산과 들, 개울과 나무, 잠자리와 버들치 따위를 접하게 되었다. 산서 시절 이전까지 그에게 자연은 간접적인 것이었다. 산서에서 그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간을 ‘직접’ 만났다. 그는 이 사태를 뒤늦게 철이 든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애기똥풀>)라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시인의 산서 생활은 모든 생명에게 주어져 있는 이름, 그러나 도시에서 사는 인간들에게는 전적으로 잊힌 그 이름을 되찾는 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렇다. 이름을 모르면 그 대상을 알 수 없다. 애기똥풀에서 여치, 매미, 단풍나무, 호박심기, 수숫대, 냉이꽃, 조팝나무 등을 거치면서 안도현 시인은 ‘아하, 없는 길이 생겨나네’라고 노래하는데, 이 지점에서 그의 시들은 발견의 시학으로 상승한다.

산서의 자연 속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이 세계의 중심임을 깨닫는다. ‘장래 희망란에다 대통령이라고 쓰던 소년’에서 ‘전투경찰에 둘러싸여 투재앵 투쟁 목청 높이던 거리의 교사’였던 시인은 이제 ‘모든 중심에 핀 꽃송이’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시인은 <세상의 중심을 향하여>에서‘그래서 나는 지금도 한국의 수도 서울에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밝힌다.

그는 지난 봄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 시인으로 나섰다. 지난해 펴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가 베스트 셀러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연어 판 돈’(인세)으로 그동안 신세진 선후배들에게 제법 많은 술을 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믿고 있는 것은 몇 푼 인세가 아니다. 호박씨를 심고 몇날 며칠씩 그 싹이 돋기를 기다려 본 생명의 체험이 그의 문학적‘부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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