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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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섬세한 성격 묘사 돋보여
더나빠질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행복을 만든다.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세상에 대한 경멸이 뿌리 깊어서 좀처럼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제임스 L. 브룩스 연출)는 괴팍한 성격의 소설가와 웨이트레스, 소설가의 이웃 사촌인 화가가 펼치는 삼각 관계를 기본 축으로 삼는다. 세 사람은 강박증·불안·동성애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갖고 있는 결함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서로를 버팀목으로 삼아 행복에 이른다.

주인공 멜빌(잭 니컬슨)은 로맨스 소설 전문 작가이지만 현실에서는 신랄한 독설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다. 길을 걸을 때는 보도 블록 금을 밟지 않으려 애쓰고, 택시 문조차 맨손으로 여닫지 못하는 강박증 환자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성격 탓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문제는 그가 남과의 불화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변해 간다. 계기는 여자다. 남편도 없이 병약한 아들과 홀어머니와 함께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웨이트레스 캐럴(헬렌 홀터). 친절하지만 불안정한 생활과 외로움 때문에 잔뜩 예민해진 상태다. 또 다른 주인공은 화가 사이먼. 게이인 그는 캐럴에게는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 멜빌에게는 질투를 유발해 두 사람을 연결하는 촉매가 된다.

이 작품은 볼거리도 변변치 않고 새로운 문제 의식도 찾아 보기 어려운 소품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꾸려 가는 솜씨는 뛰어나다. 할리우드의 성공이 단순한 물량 공세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특히 풍부한 디테일은 성격 묘사에 설득력을 더한다. 복선도 효과적이다.

잭 니컬슨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정신 병원의 숨막히는 관료주의에 맞서다가 파국을 맞는 반항적이고 자존심 강한 인물을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광기와 신경질, 세상에 대한 조롱이 배어 있는 듯한 그의 얼굴은 <배트맨>의 악당 연기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결함에 전전긍긍하는 잭 니컬슨의 연기는 섬세하고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해피 엔딩에 대한 강박이 읽히는 대목이 없지는 않다. 절망에 빠진 화가 사이먼이 캐럴의 나신을 보고 불현듯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든가, 멜빌과 세상의 불화가 너무 쉽게 풀린다든가 하는. 하지만 누구나 살다 보면 ‘너무 쉽게 변해 가네’ 라는 유행가 가사를 읊조리게 되는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작품은 그 행복한 순간에,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은 괴짜들에게 바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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