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모 감독 <아름다운 시절>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8.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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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아름다운 시절> 국내외에서 호평…영상·삶에 대한 성찰 돋보여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작품이 나왔다. 이광모 감독의 데뷔작 〈아름다운 시절〉. 이 영화는 11월 중순 개봉을 앞두고 지난 9∼10일 평론가들을 상대로 한 첫 시사회에서 상당한 호평을 끌어냈다.

〈아름다운 시절〉은 한국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5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미군이 주둔했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열세 살짜리 소년 성민(이 인)을 중심으로 풀어간 영화이다.

“대만 영화 <비정성시>와 비슷” 비판도

이 영화를 본 영화 평론가·관계자 들은 대부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0월2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시절〉을 관람한 정중헌씨(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조선일보> 논설위원)는, 사실적인 영상과 당대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이는 영화라고 평했다.

젊은영화비평집단 회장 전찬일씨는 암울했던 선대의 역사를 치밀한 연구와 고증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 감독의 ‘역사 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특히 〈아름다운 시절〉의 화법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획기적인 것이라고 극찬했다. 인물과 사건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둘러싼 전체 현실을 같은 비중으로 전달하는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에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어떤 인물도 특별히 부각되지 않는다. 주인공 성민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카메라와 롱 테이크 로 찍은 화면 안에서, 인물들은 롱 쇼트로 찍힌 프레임을 구성하는 하나의 점으로 등장한다.

이광모 감독이 그같은 방식을 사용한 의도는 관객이 인물과 사건에 빠지지 않고 스크린을 응시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이감독에 따르면, 모든 영화는 △이야기 중심의 영화 △심리와 성격 묘사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영화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세 가지 범주로 수렴된다. 그렇지만 이감독은 이 세 가지를 한데 아우르면서도 ‘거대한 시선의 틀’, 즉 관점(perspective)을 구축하는 새로운 범주의 영화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비평가가 이감독의 새로운 실험을 성공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시절〉은 지난 5월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황금카메라상을 놓고 최종 경합하기도 했으나, 현지 일부에서 대만의 세계적 감독 후 샤오시엔의 〈비정성시〉와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시대 상황과 인물을 깊이 연결해 풀어가는 이야기 방식, 롱 테이크 신과 중간 자막 삽입 따위가 그같은 인상을 심어 주는 데 한몫 했다.

그러나 지난 9월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지켜본 피터 리스트 교수(캐나다 콘코르디아 영화대학 학장)는 〈아름다운 시절〉이 〈비정성시〉와 언뜻 보기에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형식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후 샤오시엔이 설정한 인물과 사건의 디테일 속으로 파고든다면, 이감독은 그같은 디테일 속을 드나들며 대부분 사건 밖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보석”

〈아름다운 시절〉은 갖가지 영화적 요소들을 꾸준히 상호 충돌시켜 관객이 스크린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계속 견제한다. 대부분 ‘원 신, 원 쇼트’로 전개되는 1백25개의 쇼트는 주인공 성민의 회상 시점으로 펼쳐지지만, 13개의 중간 자막 쇼트는 어른이 된 성민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전자와 부딪친다(<비정성시>에서 중간 자막은 그 앞의 신과 직접 연결된다).

또 자막 내용에서도 프레임 상단에는 주인공의 주관적 기록이, 하단에는 당시의 역사 기록이 병치됨으로써 자막 자체에서도 개인의 역사와 사회의 그것이 공존과 충돌의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관점’의 영상 미학은 이 영화의 녹음과 색감에서도 일관되게 견지된다. 〈아름다운 시절〉의 소리는 동시이든 후시이든 모든 대사가 똑같은 크기로 녹음되던 종래의 방식대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현장 곳곳에 녹음 장치를 다수 배치해 소리의 원근을 살려낸 덕에 현장감이 그대로 살아난다. 색감 역시 빛 바랜 사진첩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초록 느낌의 노랑(greenish yellow)’으로 20차례나 색 보정 작업을 거쳤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진정으로 보석 같은 영화’(캐나다의 〈라 프레스〉), ‘우리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진정한 감독이 탄생했음을 깨달았다’(칸 영화제 ‘감독 주간’ 집행위원장 피에르 앙리 들로) 등 〈아름다운 시절〉은 세계 영화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10여 개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이미 일본의 도쿄 영화제를 비롯한 3개의 주요 국제 영화제에서 경쟁작으로 선정되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작품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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