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토머스 앤더슨 감독 <매그놀리아>
  • 魯順同 기자 ()
  • 승인 2000.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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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영화제 대상 받은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
베를린 영화제가 대상을 고작 스물아홉 살짜리 감독에게 돌렸을 때,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주인공은 <매그놀리아>(목련)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전작 <부기 나이트>를 본 이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감독에 따르면 <부기 나이트> 이후 과분한 일이 줄을 이었다. 톰 크루즈가 전화로 출연을 자청했던 일(이번 아카데미에서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그를 극찬한 것이 한 예다. 전작이 포르노 주변을 더듬었다면, 이번에는 텔레비전 퀴즈 쇼에 눈을 돌렸다.

숱한 퀴즈 천재를 만들어 낸 이 프로는 또 한 명의 신동을 만들어낼 참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어깃장이 난다. 신동 후보 스탠리 스펙터는 오줌을 참지 못해 프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그 수치심을 자신을 원숭이처럼 다루어 온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바꾼다. 바로 이 날 방송 도중 졸도한 퀴즈지기 지미 케이터(필립 베이커홀)는 시한부 인생이다. 딸을 성희롱해 온 그는, 죽음을 앞두고 용서를 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미 마약 중독자가 된 딸은 그에 대한 증오가 골수에 사무친 터다. 쇼의 산파인 방송 재벌 얼(제이슨 로바즈)은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보고 결혼한 젊은 아내의 위선에 신경 쓸 여력조차 없다. 오래 전 조강지처와 아이를 버린 자책감이 그를 옥죄고 있기 때문. 그에게 버림받은 아들 프랭크 매키(톰 크루즈)는 ‘여자 공략법’ 강의로 텔레비전의 스타 연사가 되어 있다. 그리고 외친다. ‘정복하라, 그리고 짓뭉개라. 우리는 수컷이니까.’ 신동·명 MC 등 휘황한 간판 뒤편의 삶이 ‘이보다 더 지리멸렬할 수 없다.’

감독 스스로 ‘<숏 컷>의 자매편’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영화는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를 빼다박았다. 별반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한가닥 실로 엮으며 이야기를 짜가는 품이 그렇고, 쓱 베어낸 단면을 통해 개인의 역사를 일러주는 솜씨도 닮았다. 지진으로 막을 내린 <숏 컷>의 대단원과, 난데없이 개구리 우박이 쏟아져 내리는 <매그놀리아>의 ‘폭풍의 밤‘ 도 닮은꼴이다.

이런 천재지변은 묵시론이라기보다는 뒤엉킨 실타래를 싹둑 잘라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수 있게 등을 토닥이는 위로의 의식처럼 보인다. “나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거짓말하고 허세 부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미화하는 것보다 드러내고 과장하는 편이 맘이 편해서다”라는 감독의 말에 비추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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