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티 블루 37.2> 무삭제판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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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블루 37.2>가 재개봉된다. 필립데잔의 동명 소설을 작가가 시나리오로 각색했고, 데뷔작 <디바>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장 자크 베넥스가 연출했다. 장 자크 베넥스는 레오 카락스와 함께 1980년대에 새로운 사조로 이목을 끌었던 '누벨이마주'(새로운 영상)의 대표 주자. 누벨 이마주는 색채와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베트 블루 37.2>도 보고 듣는 쾌감이 크지만 그것은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아니다. 뜬금없는 이미지가 돌출하고, 그것끼리 충돌하는 불협화음이 잦다. 거친 형식은 조화롭지 못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이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애를 먹을 정도로 영화가 튀고 엉뚱하다는 느낌을 준 데는 무자비한 가위질 탓이 크다. 1987년 극장에서 개봉된 1시간40분짜리는 작품을 요령부득으로 만들었다. 두 사람의 파괴적인 열정을 보여주는 정사 장면(1분55초)을 비롯해 무려 1시간이 넘는 분량이 잘려 나갔다. 장면이 잘리면서 가브리엘 야레드의 음악도 리듬을 잃어버렸다. 이번에 '시네마 오즈' 개관작으로 상영되는 작품은 3시간 5분짜리 무삭제판이다.

한적한 휴양지에서 방갈로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조르그(장 위그 앙글라드)와 그 곳에 흘러든 예측 불허의 여자 베티(베이트리체 달)의 이야기다. 글을 썼지만 평범한 막일꾼으로 살아가는 조르그는 매사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반면 육감적인 베티는 항상 에너지를 내뿜는다. 막무가내인 그녀의 열정은 종종 출구를 찾지 못해 자기 파괴적으로 흐른다.

37.2는 여자가 임신하기 좋은 체온

어느날 밤 우연히 조르그의 작품 노트를 본 후 베티는 그를 범싱치 않은 인물로 여긴다. 이후 베티의 관심은 온통 조르그의 글을 출간하는 것과 그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쏠린다.

책과 아이에 대한 베티의 집착이 크기 때문에 울분이 커진 것인지, 조르그의 문재(文才)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울분 때문에 집착이 커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베티는 조르그가 세상에 대해 턱없이 다소곳한 것이 견딜 수 없었는지 모른다.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베티는, 병원에서 임신 불가 판정을 받는다. 출판업자를 가해하는 등 베티의 집착이 제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급기야 조르그는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죽인다.

베티가 죽은 뒤 출판사로부터 출간 계획을 전해들은 조르그는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쩌면 도무지 고삐를 죌 줄 모르던 베티는, 턱없이 다소곳 했던 조르그가 불러낸 분신이었는지 모른다. 원제는 <아침 37.2>. 37.2는 여자가 열정에 들떠 있을 때의 체온, 즉 가장 임신하기 좋은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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