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소설가 겸 언론인 고종석시의 <코듯훔치기>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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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언문세설〉 〈국어의 풍경들〉을 통해 우리 시대 산문 쓰기의 한 경지를 열어가고 있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고종석씨(〈한국일보〉 편집위원)가 천년이 바뀌는 시점에서 21세기 미래를 내다본 에세이집을 펴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40회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코드 훔치기〉(마음산책)라는 책으로 엮은 것이다.

고씨는 키워드 40개를 창(窓)으로 삼아 일부는 이미 ‘실제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21세기 미래’를 들여다보거나 내다보았는데, 우리 시대 과제 상황과 정면 대결하기보다는 변두리에서 시작해 핵심 논제로 파고드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상대적으로 프랑스·미국 등 외국에 관한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래 사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 책의 표제어는 실로 다양하다. 세계화·사회주의·민족·지식인·생명공학·가족·동성애·마리화나(이 부분은 따로 추가된 것임) 등 현대인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미래’를 현재화한다. 그는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모색한다. 그에게 미래는 과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의 대상이다. 그는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 책을 통괄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 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고, 다가오는 세기에 완성해야 할 혁명은 개인주의 혁명이다. 그것은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혁명일 것이다. 이 혁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개인주의는 일상적 삶의 체계적 개성화(또는 프라이버시화)로 유연하고 느슨한 사회화를 묶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출할 것이다’. 이 문장은 지식인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는 고종석씨의 각오이자 바람일 것이다.

1993년 장편 소설 <기자들>을 펴내며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지난 4년간 소설에 관한 한 ‘절필’을 해왔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그의 펜은 마른 적이 없다. <조선일보>·민족주의·지역 감정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들과 정면으로 맞섰다. 한 문학 평론가는 그의 활발한 글쓰기를 두고 “진보의 험난한 좌절을 진실로 가슴 아파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는 충실한 좌파였고, 많은 좌파들을 부끄럽게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또한 충실한 우파였다”라고 평가했다.

21세기 미래에 대한 거대 담론을 전개했던 그는 이번 겨울 다시 소설가로 복귀한다. 그는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단편 소설을 발표한다. 오랜만에 소설을 썼더니 뒷맛이 여간 개운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예민한 문제를 다룬 에세이를 탈고했을 때와 아주 다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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