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독자들은 무슨 책을 즐겨 읽었나
  • 안철흥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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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 지음 <근대의 책 읽기>
1920년대에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요즘 국문학계의 화두는 단연 이것인 듯하다. <연애의 시대>에 이어, 이번에는 좀 다른 각도에서 동시대를 살펴본 <근대의 책 읽기>(천정환 지음, 푸른역사 펴냄)가 나왔다. 이광수 연구자인 이경훈 교수(연세대·국문학)도 조만간 <오빠의 탄생>이라는 책을 들고 대열에 합류할 참이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근대의 책 읽기>를 타임머신 삼아 과거로 한번 떠나보자.

한일합병 이후 10여 년이 지났고, 삼일운동이 막 일어난 뒤였던 1920년대는 문화적으로도 획기적인 시대였다. 보통학교 학생 수가 서당 학동 수를 넘어섰고, 글자를 해독할 수 있는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 각종 출판물도 쏟아졌다. 근대적 민족 의식이나 개인의 주체 의식이 싹을 틔운 것도 이때였다. 근대적 의미의 독자는 이런 사회 배경에서 첫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독서의 전형적인 모습은 ‘공동체적 독서-음독’이었다. 소수의 양반들은 공공 도서관에서마저 ‘다리를 도사리고 앉아서 책장을 넘기시며 음성을 내어’ 시를 읊었다. 다수의 민중은 ‘남녀 노소가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둘러앉아…유식한 사람이 높은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낭독한 뒤에 뜻을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세상사를 깨우쳤다.

그런데 불과 10년도 안 되어 독서의 풍경은 이렇게 바뀌었다. ‘나는 기차를 탔다. 녹색의 들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달아난다. …나는 공연히 멍-하고 앉은 것이 두려워 책을 꺼내어 읽었다.’(<조선문단> 1924년 10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 음독 시대가 가고, 홀로 책을 읽는 ‘묵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20년대는 또한 문예적 전범이 정립된 시기이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까지 당대 작품 가운데 ‘명작 반열에 들 만한 작품’을 선별하는 작업이 거의 끝났다. 오늘날까지도 ‘추천 도서’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1920년대 소설들은 대개 이때 뽑힌 작품들이다.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독자들은 계몽적 지식인들의 계도를 외면했다. 더구나 국한문 혼용, 띄어쓰기 없는 순 한글, 띄어쓰기 있는 순 한글, 일본어 등으로 다양하게 쓰여진 텍스트들은 독자들을 다양한 층위로 갈라놓는 구실을 했다.

국내나 일본의 문예 작품이나 외국 순수 문학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광수나 염상섭 등의 문학 작품은 지금보다 그때에 훨씬 덜 읽혔다. 반면 대다수 근대적 대중 독자는 <춘향전>이나, 남녀 간의 연애를 다룬 통속 소설·번안 소설에 열광했다. 1920년부터 1928년까지 <동아일보>에 실린 책 광고 가운데 가장 흔한 책은 <와세다대학 강의록> 등 독학 교재들이었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결혼의 당야(當夜)> <남녀의 밀화> <생식기 도해> 같은 포르노그래피 서적들이었다.

이런 책을 보는 독자층도 광범위했다. ‘옛날 같으면 꽃을 보고도 얼굴을 붉혔던 묘령의 부녀들이 대담하게도 성에 대한 서적을 빌어내어다가 열심히 탐독’(<조선일보> 1929년 4월10일자)한 것이 사회 문제가 되었을 정도다. 당대의 지식인 양주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종 성서(性書)나 생식기론, 기타 성교육을 논한 서적을 통하여 성교육을 받았다’(<동광> 1931년 12월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근대의 책 읽기>는 저자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새롭게 풀어 쓴 책이다. 따라서 조금 전문적인 독서를 요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하지만 ‘1910~1935년 신문·잡지 독자의 규모’ 같은 자료와 주석, 참고문헌 등이 책 뒤에 풍성하게 달려 있어 더 깊은 책 읽기를 시도하려는 독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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