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시대에 이미 목활자 만들었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hanmail.net)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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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지음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역사의 흔적은 도처에 널려 있다. 아무리 사소한 꼬투리라도 눈 밝은 연구자들은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다. 16세기 이탈리아 시골 방앗간 주인에 대한 종교재판 심문 기록(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이나,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인쇄공들이 벌인 고양이 처형 사건(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처럼 웃기는 일들도 그들에게 ‘걸리면’, 당대 역사를 비추는 성능 만점의 돋보기가 된다.

박상진 교수(경북대·임산공학과)에게는 나무쪼가리(때로는 부스러기)들이 그렇다. 예컨대, 백제 무령왕릉에서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무령왕의 시신을 감쌌던 관의 재질이다. 연구 결과 무령왕 관목(棺木)은 밤나무라는 통설과는 달리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金松)임이 밝혀졌는데, 이는 백제와 일본의 활발한 교류를 엿볼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된다.

경주 천마총에서도 <천마도>보다는 <천마도>가 그려진 자작나무 껍질(白樺樹皮)의 정체가 궁금하다. 만약 백두산 근처에서 나는 그 자작나무라면 고구려로부터 수입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마도>의 캔버스가 된 나무껍질은 자작나무로 통칭되지만 사실은 다른 종류인 거제수나무나 사스레나무 껍질로서 신라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박상진 지음, 김영사 펴냄)는 고분 속에서 썩어가던 나뭇조각부터 사찰의 목조 불상이나 경판, 그리고 최근 출토된 나무 화석에 이르기까지 나무가 지닌 갖가지 사연과 잃어버린 세월의 흔적을 읽어낸 책이다. ‘고고목재학’이라는 자연과학 방법론을 동원하는 저자는 때로 기존 학설과 배치되는 생각을 펼치기도 하는데, <팔만대장경> 경판을 강화도가 아닌 해인사 인근에서 만들었을 것이라든가, 신라 시대에 이미 회양목으로 목활자를 만들어 썼을 것이라는 추론이 대표적이다. 또,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가 한자 표기대로 박달나무라기보다는 느티나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월을 견디는 힘이나 분포 지역, 넉넉한 품새로 볼 때 박달나무보다는 느티나무가 ‘신수’로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역사와의 연관성에 유념하지 않아도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책 뒤쪽에 이런저런 생활 속의 나무 이야기를 따로 모으기도 했지만, 가령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 따위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순천 송광사의 비사리 구시(나무 밥통)도 알려진 것처럼 싸리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다. 그렇다면? 정답은 책에 있다. 힌트는 둘이 같은 나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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