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에 관한 가벼운 농담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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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불한당들의 세계사’에 관심이 간다는 연출자의 말처럼 영화 <범죄의 재구성>(연출 최동훈)에는 불한당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욕망이 두드러진다. 내건 깃발은 범죄 스릴러 코미디. 사건의 주모자가 누굴까 추리하는 것이 범죄 스릴러의 본령이겠지만, 이 작품은 감독이 벌려놓은 양아치들의 세계를 곁눈질하는 재미가 더 쏠쏠해 보인다.

<범죄의 재구성>은 양아치 중에서도 상 양아치로 꼽히는 사기꾼의 세계를 다룬다. ‘사기 전과 2범이면, 실제로는 스무 번은 넘게 사기를 쳤을 것’이라는 영화 속 형사의 일갈처럼 사기 치는 사람은 많아도 사기꾼으로 엮어 넣기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극중 최고 사기꾼 김선생(윤문식)은 별이 한 개도 없다. 푼수 끼가 있는 사기꾼 인경(염정아)은 하수답게 별을 2개 달고 있다.

영화는 1996년 구미에서 일어난 은행털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서는 한국은행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작업은 싱거우리만큼 쉽게 끝난다. 장인 반열에 든 위폐범이 작업에 가담해 당좌 수표를 위조하고, 그 수표로 한국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한다. 관심은 그 다음 단계다. 어차피 범죄가 아니라, 선수들의 세계에 관심이 있으니 당연한 순서이다.

결정적인 순간 한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오면서 위기 상황이 벌어진다. 다행히 현금을 손에 넣었으나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모두 뿔뿔이 흩어진 와중에 돈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대체 누구 짓일까. 고수답게 뭔가 석연치 않다는 낌새를 챈 대장 ‘김선생’은 바삐 주판알을 튀기기 시작한다. 그가 돈과 사람이 사라진 현장을 답사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사기꾼들의 이력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범죄의 재구성>은 추리물로는 자격 미달인지 모른다. 이미 너무 많은 정보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한 출판사와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면서 극의 주요 모티브인 ‘쌍둥이 형제’의 복수극이라는 설정이 일치감치 드러나 버렸다. 관심은 좁혀질 수밖에 없다. 얼개가 복수극이니, 주인공이 형인지 동생인지만 남는다.

‘2% 부족한 추리물’ 아쉬움

하지만 누구를 앞자리에 놓아야 할지 모를 정도의 호화 캐스트는 이런 아쉬움을 메우고 남는다. 얼굴만 보아도 웃음이 터지는 백윤식,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구축한 염정아, ‘양복도 안 어울리고 일상복도 안 어울리는 배우’라는 딱지를 얻은 아메바형 배우 이문식 등 한다 하는 연기자들이 각기 개성을 뽐낸다. 짬짬이 곁들여지는 꾼들의 작업 광경은 ‘실용 정보’로도 손색이 없다. 부디 이런 상황, 이런 사람 조심하시라!

<범죄의 재구성>은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기존 범죄 영화들이 으스스한 화면으로 한껏 분위기를 잡는 잔인한 범죄 스릴러나 코믹 터치의 양아치 영화 일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보기 드물게 의욕적인 기획으로 보인다. 비로소 가볍고 쿨한 태도로, 농담하듯 불한당들을 스케치해 낸 것이다. 그 불한당들은 각기 혀를 내두르게 하는 비기를 가진 장인들이지만, 비범해 보이기보다는 귀여워 보인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삼류 인간들이 말장난하고 노닥거리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를 직접 찾아보는 것도 생산적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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