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핸들 놓으면 삶이 행복해진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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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앨버드 지음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
1988년 독일인 미하엘 하르트만은 자동차들이 자기만이 아니라 휠체어를 탄 사람들과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의 길까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고 속이 상해 인도에 주차된 차들 위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은 공적 공간을 점령한 차들에 분노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고, 이른바 ‘자동차 보행(car walking)’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의 자동차 보행자들은 그들이 밟고 지나간 차의 앞창에 ‘당신의 차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 밑으로 기어서 가기 싫어서요’라는 전단을 남기기도 했다. 법원에서는 차가 인도에 주차되어 있고 자동차 보행자가 그 차를 손상할 의도가 없다면, 차 위로 걷는 것이 위법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미국의 교통개혁 활동가 케이티 앨버드의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박웅희 옮김, 돌베개 펴냄)에 소개된 일화다. 생산량 세계 5위인 ‘자동차 대국’ 한국의 보행자들도 아마 비슷한 분노와, 그 분노를 하르트만처럼 표현하고 싶은 유혹을 한번 이상씩은 다 경험했을 것이다. 차가 때때로 현대의 애물이 되더라는 일종의 공감대가 벌써부터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차는 점점 더 많아지고, 차에 대한 사람들의 의존도 거의 중독 수준으로 깊어지고 있으니 묘한 일이다.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는 사람들이 자동차 중독에 이른 원인과 과정, 중독의 구체적 폐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적 사례 들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자동차 중독 과정을 젊은 남녀의 맹목적 사랑에 비유하면서 ‘불쾌한 연애사’라고 명명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자연스런 귀결이 아니라 정부와 업계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되어서 불쾌한 연애사다. 예컨대, 도로를 건설할 때 정부가 건설비를 전액 지원함으로써 자동차 소유자들은 차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낸 세금으로 건설한 비과세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엄청난 특혜다. 지원이 아니라 융자만 제공받았던 철도가 자동차에 밀릴 수밖에 없다.
포드 사 같은 기업들은 대도시의 전차 노선을 사들인 다음, 그 설비를 해체해 버리고 대신 버스를 투입했다. 먼저 사고 나중에 갚는 신용 할부 구매를 처음 도입한 것도 자동차 업계였다. 이전까지는 저축해서 현금으로 사는 것이 일반적인 상품 구매 형태였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는 주간(州間)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냉전 논리까지 동원되었다. 핵 공격을 받았을 때 신속하게 대피하기 쉽고, 자동차 차체가 방사능 낙진을 막아준다는 식이었다. 정부와 기업의 이같은 공동 전선으로 ‘자동차들은 메뚜기떼가 들판의 곡식을 먹어치우듯 우리의 가로와 광장을 점령했다.’

사람들은 그 대가로 ‘은행 계좌와 건강과 지구 환경 손상’을 치르게 되었다. 이 책의 2부는 자동차 중독이 가져온 각종 폐해들에 할애되는데, 공동체 의식 상실을 이야기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은 특히 뼈아프다. ‘심한 눈보라가 몰아친 직후에는 모든 사람이 걸어서 근처 가게에 가고, 도중에 이웃을 만나면 멈추어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그렇게 한나절쯤 주변 사람들과 연결된 것을 느끼고 있으면, 그때 제설차가 들어온다. 사람들은 다시 자기 차에 뛰어올라 붕 소리를 내고 떠나버린다.’

3부에는 ‘기계적 이동’을 ‘인간적 접근’으로 바꾸는 구체적 방법들-곧 어떻게 하면 자동차와의 이혼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실천 지침이 소개되어 있다. 방법은 카프리(car-free)와 카라이트(car-lite) 두 가지다. 전자는 자가용 승용차 없이 살면서 걷기나 자전거를 주된 이동 수단으로 삼되 꼭 필요할 경우에 대중 교통이나 카풀·택시·렌터카 등의 신세를 지는 것이고, 후자는 자가용을 소유하되 반드시 써야 할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자가용 이외의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지금 당장 이혼하고 모든 연락을 끊으라는 급진적 주장을 펴는 대신, 먼저 시험적으로 별거해 보고 견딜 만하면 이혼을 결행하라고 권한다. 이혼했다고 해서 ‘전처’를 악착같이 피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자동차와의 단혼(單婚) 관계는 꼭 깨뜨려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삶이 즐겁고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미국 사례 위주여서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자동차를 담배와 비교한 결론 부분의 선동에는 기꺼이 넘어가주고 싶다. ‘우리는 비흡연자들의 불편을 해소했다. 이제는 비운전자들의 불편을 해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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