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품에 안은 ‘그녀들’
  • 윤석진(충남대 국문과 교수) ()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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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타령> <부모님 전 상서> 통해 본 우리 시대의 자화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송을 시작한 MBC 주말 연속극 <한강수타령>(김정수 작, 최종수 연출)과 KBS2 <부모님 전 상서>(김수현 작, 정을영 연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시청자의 관심 영역에 들어와 있다. 우선 그 이름만으로도 텔레비전 리모컨을 고정시키는 작가 김정수와 김수현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라는 점이 그렇고, 작가를 대신해 전면전에 나선 김혜수와 김희애의 연기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MBC가 KBS의 최근 드라마 상승세를 꺾고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지도 흥미로운 관심거리다.

그러나 <한강수타령>과 <부모님 전 상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 드라마는 삼각관계에 기초한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 불륜, 이혼, 자녀 문제까지 지금까지 물리도록 보아온 그렇고 그런 ‘뻔한’ 소재들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듯 뻔한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은 전혀 ‘뻔하지 않다’.

‘뻔한’ 소재 ‘뻔하지 않게’ 다루어 눈길

뻔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다. 바로 이 점이 새로 방송되기 시작한 두 편의 주말 연속극을 주목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다. <사랑이 뭐길래>(김수현 작, 박철 연출, 1992년)와 <그대 그리고 나>(김정수 작, 최종수 연출, 1997년)를 통해 변화한 1990년대 가족의 실상을 담아냈던 작가들의 시선에 잡힌 2000년대 우리의 일상 현실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신데렐라와 캔디조차도 현실적인 인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을 만큼 지극히 현실적인 대중 예술이다. 하지만 그런 류의 드라마들은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시청자의 기억에서 멀어진다. 진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일상적인 현실에서 출발하는 드라마의 경우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되어 오래 남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일 연속극이나 주말 연속극이 미니 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일반적으로 주말 연속극의 현실성은 남녀 간의 팽팽한 대립과 갈등을 중심으로 풀려가는 가족 이야기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강수타령>과 <부모님 전 상서>는 남녀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여성’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강수타령>은 혼자서 억척스럽게 생선장수를 해가며 아이들을 키운 엄마 김영희(고두심 분)와 큰딸 가영(김혜수 분), 작은 딸 나영(김민선 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모님 전 상서> 역시 어린 나이에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다가 자폐아를 낳은 뒤부터 난관에 봉착하는 안성실(김희애 분)과 그녀의 친정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한 집안의 ‘큰딸’을 중심으로 구축된 인물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고 남성은 여성을 보조하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곧 남성이 예전 드라마에서와 같이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쎈’ 여성과 ‘약한’ 남성이라는 구도는 최근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드라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과거 일제 식민지 시절에서부터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시기에 대중적 호응이 높았던 소설·영화·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남성이 위축된 ‘위기의 시대’는 상대적으로 ‘쎈’ 여성을 원한다. 그래서 1930년대 소설이나 1960~1970년대 영화, 1990년대 말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여성은 정치적·경제적으로 거세당한 남성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위기가 해소되는 순간 ‘그녀들’은 ‘그들’에 의해 가정으로 되돌려진다.

‘위기의 시대’는 ‘쎈’ 여성을 원하는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는 2004년 늦가을의 위기감을 안고 안방 극장에 입성한 <한강수타령>과 <부모님 전 상서> 역시 ‘그와 그녀’가 아닌 ‘그녀들’을 앞세워 현실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현실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속의 ‘그녀들’은 이제 더 이상 ‘거세당한 남성’의 대타(代打)가 아니다. 이제 ‘그녀들’은 위기가 해소되어도 과거처럼 ‘그’의 손에 이끌려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딸·시누이·올케·자매’ 같은 호칭으로 떨어져 있다가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한 ‘그녀들’은 이제 한없이 부드러워진 ‘그들’을 품에 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밑그림을 그려가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님 전 상서>와 <한강수타령>은 여성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했던 과거에서 벗어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들 드라마가 그들의 역사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그녀들의 역사 ‘허스토리(Herstory)’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일상 현실과 어떻게 접목되는지 눈여겨볼 때 두 편의 드라마에 내재되어 있는 또 다른 현실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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