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부활 깃발 올랐나
  • 박영태(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 ()
  • 승인 2004.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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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중견화가 전시회 잇따라…한국적 미의식의 전통 새롭게 해석
최근 볼 만한 동양화 전시가 연이어 열렸다. 서울 인사동이나 사간동에서 동양화 전시가 열리지 않는 날은 없지만, 현재 국내 동양화단의 비중 있는 40~50대 작가들이 릴레이 식으로 전시회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김성희(금호미술관) 김호득(동산방·조선일보미술관) 강경구(학고재) 사석원(가나아트센터) 이은숙(도올갤러리) 정종미(동산방)가 10~11월에 개인전을 연 작가들이다. 같은 기간에 열린, 이들보다 아래 세대인 이기영(금산갤러리) 유근택(사비나미술관) 민재영(아트포럼뉴게이트) 서은애(인천 신세계갤러리) 강석문(가이아갤러리)의 전시도 주목되었다.

새삼 동양화 부흥기일까? 영상과 테크놀로지 미술 등 첨단 현대 미술의 파고에 밀려 다소 주눅 들어 보이던 동양화단에 최근 신선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 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간 동양화 작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인 것은 사실 동양화 작가들이 고루한 전통에 발목 잡혀 있거나 관습적인 그림에 매몰되어 있었거나, 또는 동양화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몰라 헤맨 것에 따른 결과들이었다. 따라서 근자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기존 동양화와는 다른 참신하고 의미 있는 시도들이 전개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야기를 좁혀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인 강경구·사석원·정종미의 그림을 살펴보자. 강경구는 <물길>이라는 제목으로 물과 사람이 있는 풍경을 그렸다. 한지에 혼합 재료 혹은 한지나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그의 그림은 물로 상징되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생을 헤쳐 가는지를 다소 비장하게, 그러나 무겁지 않게 보여준다. 동양화의 정체성이나 수묵의 정신성 같은 의미망을 덜어낸 그림에는 다분히 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나고 깨닫고 이해되어 가는 것을 즐겁게 그려낸 작가의 여유로움이 담담하게 묻어 있다. 이런 자세는 다분히 지식인적 화가상의 한 표본으로 제시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동시대의 문인화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 아닐까.
유화 물감 ‘떡칠’해 동양화 같지 않기도

정종미는 다른 방향에서 동시대 동양화 작업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가에게 동양화란 여전히 한국인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며, 옛 선조들의 작업 방식과 기법 등에 대한 온전하고 깊이 있는 체득을 바탕으로 비로소 출현하는 그 무엇이다. 작가는 전통 기법을 완벽히 재현해 내는가 하면 천연 염료와 벽화기법, 천과 문양, 전통적인 채색화 등을 원용해내는 작업에 충실하다. 특히 조선의 여성상을 남자 초상화마냥 제시하거나 미라처럼 환생시키는 작업을 통해 남성 가부장제 사회에서 고된 삶을 영위했던 한국 여인들을 그림으로 되살려 기념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적 의도도 엿보인다. 동양화 작업의 의미나 입장, 목표가 선명한 전략적인 그림이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떡이 되게 이겨 바른 사석원의 그림은 더 이상 동양화라고 부를 수 없다. 아이들·당나귀·닭·양·꽃·매화·새 등과 인왕산이나 바다 등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장식성이 강하고 천진난만하고 화려하고 황홀하다. 마치 김종학의 설악산 풍경이나 새 그림이 떠오르는가 하면 조선시대 민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는 아마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구분을 없애고 그냥 회화로 불리기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 방식은 황창배라는 걸출한 화가가 진작 시도했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너무 나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사석원은 동양화의 근간인 대상에 대한 직관적 파악, 생명 현상과 생명체를 포착하고 추려내는 선의 힘 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진동하는 한 그의 그림은 여전히 동양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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