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도량이 최우선 대형 불사는 그 다음”
  • 합천 해인사·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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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변화 앞장서서 이끄는 현응 주지 스님
“빈방의 문을 열면 얼굴이 후끈거릴 정도로 기름을 낭비한다.” “대중의 명분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수행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도 개인주의 태도 때문에 손을 못 쓰고 있다.” “초심자 시절에는 당연히 계율을 지켜야 하는 줄 알고 엄격하게 생활하다가 선배들이 계를 지키지 않고 또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면서 점차 뻔뻔해진다.”

요즘 해인사의 움직임에 불교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수행풍토 진작을 주제로 지난 11월 말 해인사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모두 100여 명의 수행승이 참여했고, 신랄한 자기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해인사는 지난 11월7일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 스님들이 대거 참여해 ‘해인총림 및 교구 발전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올해 말 한 차례 더 열린다.

해인사는 강원·율원·선원과 주변 암자 등에서 2백여 스님이 수행 중인 국내 최대 규모의 사찰 중 한 곳. 더구나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이 주석하고 있어 상징성이 크다. 그런 해인사가 거대한 변화를 모색 중이다. 그리고 새 주지 현응 스님이 그 중심에 서 있다. 교구발전 토론회는 현응 스님이 첫 사업으로 제안해 성사시킨 일이다.

비주류 소장 개혁파로 ‘청정 가풍’ 되살려

현응 스님을 주지에 임명한 일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교구 본사 주지가 되기에는 이른 나이(50세)였을 뿐 아니라, 복잡다양한 해인사 인맥에서 비주류에 속했기 때문. 하지만 전임 주지 세민 스님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인 8월30일 해인사 방장이기도 한 종정 법전 스님은 하안거 해제 법어를 발표하면서 그를 차기 주지로 낙점했다. 당시 세민 스님은 동판 대장경 제작과 신행문화도량 신축 등 대형 불사를 추진하면서 불교계 안팎의 반대 여론에 맞서고 있었고(<시사저널> 제766호 참조), 현응 스님은 대형 불사를 반대하는 해인사 젊은 스님들의 좌장 격이었다. 이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법전 스님이 개혁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평이 나왔다.

1971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종성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현응 스님은 그동안 조계종 내에서 대표적인 소장 개혁파로 꼽혀 왔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원택·여연·향적 스님과 함께 <해인>지를 창간해 불교계 개혁 목소리를 대변했다. 1990년 초에는 ‘청정 가풍을 되살리는 수행과 교육만이 종단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법·수경 스님과 함께 선우도량을 발족했으며, 실천불교승가회에도 참여했다. 1994년 종단 개혁 과정에서는 개혁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서 종헌 종법을 바꾸는 데 핵심 역할을 해 불교계 내부에서 ‘법령통’이라고 불린다.
현응 스님이 주지에 취임한 지 꼭 두 달째 되는 날인 지난 12월15일 해인사를 찾았을 때, 절 안팎은 여전히 토론회가 화제였다. 지금까지 세 번의 토론회 동안 현응 스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고 한다.

“토론회는 해인사가 내부 비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다. 토론회에서 나온 비판은 앞으로 적극 수용해 가겠다”라고 그는 말했다.

대중의 동의를 통한 해법 찾기는 현응 스님의 오랜 소신이다. 그는 이미 대형 불사 수습 과정에서도 이를 보여준 바 있다. 그가 주지가 될 무렵 해인사의 대형 불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공식적인 재검토 선언을 미루고 두 달 동안 꾸준히 의견을 들었다. 그동안 기자가 그와 접촉할 때마다 그는 “산중 스님들과 좀더 상의하겠다”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서야 자기 생각을 내놓았는데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신행문화도량에 대해 그는 “연수원 시설은 필요하지만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초현대식 설계 또한 가야산이나 해인사와 어울리도록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난 12월21일 서울에서 설계자 조성룡씨와 교계·건축계 인사들을 모아놓고 공청회를 열었다. 공사는 후일 대중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유보된다. 불사를 위한 비용 조성도 동판대장경 판매로 거액을 마련하는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 확고한 뜻이다.

의결 기구에 비구니 스님들도 참여시켜

<팔만대장경>을 동판으로 다시 제작하는 이른바 ‘동판 불사’도 규모가 대폭 축소된다. 그는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선양한다는 원래 취지는 좋지만, 신앙을 위해서건 불사 비용 조성을 위해서건 8만장 모두를 동판으로 제작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불교 경전과 문화 유산을 널리 알린다는 차원에서 <화엄경> <육조단경> 등 대표적인 경율론이나 선어록 몇 종만 동판으로 제작해 전시관에 비치하거나 탁본할 수 있는 도구와 함께 신도들에게 배포할 생각이다.

그는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내년부터 차츰 일반 관람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그는 가야면과 함께 매년 여는 ‘대장경 축제’를 활성화하고, 해인사박물관을 목판인쇄문화 전문 시설로 특화해 지역 문화와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해인사는 문화·관광 사찰 성격에서 벗어난 수행·연구·교육 도량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림 스님의 대장경연구소에서 고려대장경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디지털화 작업을 했지만, 한문 입력 자체만으로는 큰 활용도가 없다. 동국대 역경원이 번역한 한글 대장경은 <고려대장경>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일본의 <신수대장경>을 저본으로 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고려대장경> 역주본조차 없다. 불경 내용 자체를 연구하는 대장경학도 필요하다. 연구 과제가 너무 많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맞는 불사가 아니겠는가? 이게 바로 해인사에서 해야 할 몫이다.”

그는 내년쯤 해인사 안에 불학연구원(가칭)을 설치할 계획이다.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을 초빙하고, 네트워크화해서 해인사를 불교학 연구센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전체 대중의 공의를 모아 추진될 예정. 교구발전 토론회는 그 출발점인 셈이다. 그의 해인사 개혁 의지는 최고의결기구인 ‘임회’에 최초로 비구니 스님들을 참여시킨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는 어학연수원을 만들어 불교 문헌을 연구하거나 통역을 맡을 비구니 스님을 양성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복지·문화 사업을 하거나 포교에 전념하는 절은 많다. 해인사까지 그런 데 나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뛰어난 수행 도량으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해인사에 맡겨진 역할이라고 본다. 불사는 그 다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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