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골목길이 건물 속에 들어왔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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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쌈짓길’, 참신한 건축 미학으로 눈길 끌어
2004년 봄, 쌈지 천호균 대표가 새로 짓는 인사동 쇼핑몰에 골목길을 낸다고 했을 때,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했다. 천대표가 수평적인 길을 수직으로 연장했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월18일, 인사동 쇼핑몰 쌈짓길 개장식에 가서야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건물에 길이 나 있었다. 쌈짓길은 우리 전통 가옥의 형태를 따라 ㅁ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탈진 길이 빌딩을 에돌아 1층부터 4층까지 한 달음에 닿을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이 마치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는 듯했다.

쌈짓길을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최문규씨였다. 최씨는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들어선 ‘딸기 테마파크-딸기가 좋아’를 설계해 올해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 공식 초청된 건축가로 주목되고 있는 중견 건축가다.
최씨에게 천대표가 주문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원래 그 건물 자리에 있던 열두 가게를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해 달라는 것과, 큰 마당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설계에 들어가려고 하니 곳곳에서 시어머니가 몰려들었다. 구청 공무원과 인사동 토박이 들이었다.

구청 공무원들은 인사동 거리에 맞도록 건물에 기와를 올리라고 성화였고, 인사동 토박이들은 건물에 전통적인 것이 없다고 구박이었다. 최씨는 “정말 두 번 다시 인사동에 건물을 짓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이 시달렸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새겨들을 말도 많았다. 덕분에 설계에 더 정성을 기울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우리 전통이 무엇인지, 인사동에 맞는 건물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최씨는 인사동 거리를 배회했다. 인사동 길을 수없이 배회하던 그가 발견한 것은 인사동에 제대로 된 전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나 말을 먹이던 구유들이 가게 안에 들어와 있고, 온갖 키치적인 것투성이였다. 살아 숨쉬는 전통은 없고 온통 박제가 된 전통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사진을 수백 장 찍어 인사동을 분석한 최씨는 일단 쓰지 말아야 할 재료부터 골랐다.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 조악한 페인트, 화려한 간판, 울긋불긋한 조명 등 인사동과 상극인 재료를 제하고 쇠와 나무 벽돌 콘크리트 유리 등 인사동과 조화하는 재료를 골랐다. 그는 “꼭 기와를 얹어야만 한국식이 아니다. 우리 전통을 내면화하는 데 설계의 주안점을 두었다”라고 말했다.

“우리 전통 내면화”

그가 인사동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바로 골목길이었다. 작은 골목들이 사통팔달로 서로 난마처럼 얽혀 소통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골목길을 건물로 끌고 들어오기로 결정했다. 건물을 둘러싼 골목길들을 5개의 문으로 연결해서 끌고 들어와 건물을 에돌아 옥상까지 연결했다. 인사동 길 한가운데에 똬리를 튼 쌈짓길은 5개의 문을 통해 인사동 골목길을 하늘로 연장시켰다. 남인사마당에서 북인사마당까지 인사동길의 전장은 5백m 정도이다. 새로 난 쌈짓길은 이 인사동 길을 하늘로 2백50m 가량 확장했다.

쌈짓길 설계에 참여한 또 다른 건축가 가브리엘 크로이츠 씨는 건물에 풍수지리의 색칠을 더했다. 우리의 풍수지리에 심취한 크로이츠 씨는 쌈짓길이 풍수지리의 원칙을 따르도록 했다. 그는 “풍수지리는 미신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 과학이다. 풍수지리는 햇볕 바람 물 흙의 특성을 잘 파악해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구현해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쌈짓길의 남쪽을 터놓음으로써 안마당이 햇볕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북쪽은 검은 벽돌로 막았다. 그는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계단의 위치도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에 맞게 배치했다”라고 말했다. 현대판 좌청룡 우백호라 할 수 있는 건물 숲에 둘러싸인 쌈짓길은 사방으로 인사동을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 되었다.

이런 건축적인 의미 외에도 쌈짓길이 돋보이는 것은 쇼핑몰로서의 실용성 때문이다. 인사동 쇼핑객들은 길을 따라서 1층에 있는 가게들만 둘러보는 것이 보통이다. 2층은 찾는 사람이 1층보다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전통 찻집이나 갤러리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쌈짓길은 건물에 길을 냄으로써 쇼핑객을 4층까지 끌어올렸다.

쌈짓길에는 숍이 72개 들어서 있다. 쇼핑몰로서 쌈짓길의 특성은 눈높이가 올라갈수록 제품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제품의 값이 비싸지는데, 지하에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제품들은 대부분 우리 전통을 재해석한 디자인 제품인데, 특히 전통 민화를 응용한 제품이 많다.
간판도 모두 한글 이름으로 짓도록 해

문화공보부 문화예술국장 출신으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수석자문위원을 지내고 쌈짓길 운영을 맡은 천호선 대표는 쌈짓길에 들일 숍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는 주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는 공예과 교수들을 쌈짓길에 끌어들였다. 특히 우리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들을 주로 발굴했다.

최씨와 천씨는 직접 모든 숍을 조율하며 쌈짓길이라는 하드웨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가 채워지도록 까탈스럽게 간섭했다. 실내 인테리어와 조명에 간섭하는 것은 물론 간판까지 모두 한글 이름으로 짓도록 요구했다. 한글 전용을 요구한 것은, 인사동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배려였다.

쌈짓길 설계가 필생의 업이었다고 말하는 최씨는 “건축은 건물과 사람과의 소통을 일으켜주는 일이다. 쌈짓길은 지금 맨얼굴을 하고 있다. 앞으로 계절마다 다른 색깔 옷을 입고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쌈짓길에는 그동안 전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전문 도예가들의 작품을 파는 숍(사진 1,2)이 여러 곳 들어서 있다.

천호선 대표는 민화 등 우리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상품(사진3,4) 매장을 쌈짓길에 모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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