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예술가들, '한국, 한국 사람'을 말하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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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아이즈드’전/외국 예술가들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 사람’
외국 예술가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여전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 혹은 동방의 등불일까? 아니면 정부가 엄청난 홍보비를 퍼부으며 알리고 있는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일까? 디자이너 오승환씨와 탱화 작가 최훈석씨, 그리고 오랫동안 국내에 거주하며 한국을 깊이 관찰한 프랑스인 벵자맹 주아노 씨와 캐나다인 앤 라둬서 씨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했다.

외국 예술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를 모은 <코리안-아이즈드(Korean-Eyesed)>전(1월12~25일 관훈갤러리)에는 한국에 거주했거나 한국을 자주 왕래하는 외국 작가 12명의 작품이 모여 있다. 전시회를 기획한 오승환씨는 “한국이 서양 미술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만이 아니라 서양 미술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관련 작업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인 그래픽 아티스트 조너선 반브룩 씨(영국)는 이번 전시회에서 북한 관련 이미지를 선보인다. 그는 북한의 이미지를 획일화한 독재 국가로 활용하는 미국 사회가 북한보다 더 획일화한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다. 북한의 선전 선동 예술과 미국 초국적 기업의 홍보 마케팅이 ‘쌍생아’라는 것이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초청 작가이기도 한 안토니오 갈리고 씨(프랑스)는 한국 목판화가 갖는 소박함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카피레프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민중 미술의 주요 도구였던 목판화가 갖는 대량 복제성에 주목했다. 1987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신의 대형 모자이크 작품을 구매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과 인연을 계속 이어온 클로드 라이흐 씨(벨기에)는 한국적인 선과 색을 회화에 도입했다. 10년 동안 한국을 스물다섯 차례나 방문하며 넘치는 한국 사랑을 보여주었던 이본 보그 씨(호주)는 이번 전시회에서 조용한 도시 청주를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생활 자기 속에 들어간 남산·금강산

한국화가 갖는 단순 질박함도 외국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메리언 윅 씨(호주)가 대표적인데 그녀는 투박한 한국 생활 자기를 남산과 금강산과 설악산 모양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가벼운 만화 형식의 그림으로 한국의 도시를 표현한 카렌 프리그 씨(캐나다)는, 복잡한 도시를 단순한 색과 선으로 그렸는데도 그림에 생동감이 넘친다.

제인 아이비 씨(미국)는 전통 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발랄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그림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화투를 소재로 다소 키치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그는 화투의 오광에 검은 먹물을 머금은 오징어를 그려 넣음으로써 아이러니를 표현했다.

한국적인 소재를 재해석한 작품도 눈에 띈다. 예심 샌딜 씨(터키)는 상여를 장식하는 데 쓰이는 모구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모구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한국인의 의식이 드러나는 인형이라고 해석한다. 클레르 와시티오 씨(프랑스)는 전통 한복의 두루마기를 활용했다. 두루마기의 넓은 품에 자신의 그림을 붙였다.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이시이 준이치로 씨(일본)는 너무도 빨리 변하는 한국 사회에 기록을 남겨놓자는 의미로 사람들의 발자국을 모은 작품을 선보였다.

여성 작가들은 주로 페미니즘 시각에서 한국의 남성중심주의를 고발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엘리자베스 젠덱 씨(캐나다)는 복주머니와 고추로 남성 성기 모양을 만들어, 여성들에게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지 않아 남성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엘로디 도흐낭 씨(프랑스)는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는 모녀의 몸에 문신을 그려넣음으로써 한국의 가족주의를 마피아의 조직원 챙기기에 비교하기도 했다.

기획자들은 전시 기간에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통해 그들의 한국관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벵자맹 주아노 씨는 “한국인이 스스로를 검열하는 전시회가 아니라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전시회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들은 모두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품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획자들은 앞으로 해외입양인 작가들의 전시회와 외국 사진작가들의 한국 사진전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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