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뜨면 아시아 스타 된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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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한류’ 타고 한국 무대 진출한 외국 연예인들
지난 연말 연초, 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과 중국, 동남아 일대를 누비며 한류 전파에 나섰다. 같은 시기, 규모는 미미하지만 아시안 스타와 스타 지망생들 역시 한국을 찾았다.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대중 문화의 아성이 된 한국 시장을 공략해 아시안 스타로 떠오르기 위해서다.

지난 1월13일, 청담동의 SM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는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인 한경(22)이 힙합춤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 소수민족 출신인 그는 2002년 SM엔터테인먼트가 베이징에서 실시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되었다. 연습생으로 2년째 춤과 노래를 익히고 있는 그의 목표는 강타 형처럼 스타가 되어 중국에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지만 한경은 휴일에도 쉬지 않고 맹연습한다. 데뷔하기 위해서는 내부 경쟁에서 이겨 선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중국에서 온 연습생 2명은 물론 다른 한국 연습생과도 경쟁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필살기로 리듬 앤드 블루스(R&B)를 익히고 있다. 아직 중국에서는 R&B가 미국이나 한국만큼 대중적이지 않지만 앞으로 유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이제이’ 전략으로 현지화 노려

한경과 같은 헤이룽장성 출신인 관지엔(25)은 베이비복스를 배출한 DR기획에서 연습 중이다. 아역 CF 스타 출신인 그는 중국 동방TV의 한류 관련 프로그램에서 MC를 본 것이 인연이 되어 DR기획에 스카우트되었다. DR기획은 앞으로 그를 한국에서 데뷔시킨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본토를 공략할 예정이다.

중국인을 키우는 것에 대해 DR기획 윤등룡 대표는 ‘이이제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한류를 통해 그 나라 대중 문화가 발전하면 그 나라 스타가 한류 스타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공개 오디션을 통해 동방신기 멤버 1명과 천상지희 멤버 1명을 영입할 예정인 SM엔터테인먼트 김경욱 대표는 “시장 장벽을 넘기 위해서도 현지 스타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DR기획은 솔로로 데뷔하는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계속 한류 스타로 남을 수 있도록 현지 스타를 활용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인기가 좋은 간미연의 경우 중국 남성 파트너를 붙여주어 듀엣으로 활동하게 하고, 태국에서 인기가 좋은 이희진은 태국 남성 파트너를 결합시켜 태국 시장을 공략하게 하는 것이다. DR기획 윤대표는 “이제 아시아를 겨냥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연예기획사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시안 스타가 되려는 스타 지망생들이 한국을 찾는 것은 한국의 발전된 스타 양성 시스템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최고 스타가 된 산다라 박(21) 역시 이런 이유로 한국의 YG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필리핀에서는 최고 스타가 되었지만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던 그녀는 필리핀을 방문한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를 무작정 찾아가 자기를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산다라 박의 요구를 양대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의 춤과 노래 스타일이 힙합과 R&B 등 흑인 음악을 주로 하는 YG엔터테인먼트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다라 박은 여러 번 양대표를 찾아간 끝에 허락을 얻어내고 필리핀 최고 스타에서 YG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기꺼이 ‘백의종군’했다.

중화권 스타 지망생들의 ‘코리안 드림’이 활발한 데 비해 일본의 스타 지망생이 한국을 찾는 경우는 아직 드문 편이다. 일본에 비해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일본 여고생 가수 쓰루오카 마이(18)는 드물게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스타 지망생이다. 시장 규모와 상관없이 한국의 매력에 빠진 마이는 한국 활동을 결심했다.

중학교 때 밴드를 조직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데뷔한 마이는 일본에서는 이미 메이저 음반사에서 싱글 음반을 낸 인정받은 신인 가수였다. 그러나 한국 데뷔를 위해 기초부터 다지기로 결심한 그녀는 풍문여자고등학교에 문화교류학생으로 입학해 한국어 실력부터 닦았다. 지난해 여름, 그녀는 한국에서 첫 번째 싱글 앨범 <어웨이>를 발매했다.

미스 싱가포르 출신인 싱가포르 방송 스타 유니스 올슨(28) 역시 한국에 반해 한국에서 데뷔한 경우이다. 지난해 6월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해 제2의 연예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6개월 동안 한국을 다섯 번 방문했다. 올 때마다 몇 주일씩 한국에 머무르며 한국의 매력을 만끽했다. 한국의 문화는 풍부하고 깊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로 하여금 한국에서 데뷔하기로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의 음악 팬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었다. 열광적인 한국의 콘서트장을 본 그녀는 자신의 음악을 펼칠 무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그녀는 “내 음악은 보사노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정열적인 음악을 소화해줄 팬은 아시아에서 한국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의회에서 비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싱가포르에서는 정치 활동을 하고 한국에서는 연예 활동을 할 계획이다.

유니스 올슨이 한국 관객에게서 가능성을 읽고 한국에 진출했다면, 일본의 음반 프로듀서 하야시 요시키(40)는 한국 가수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한국에 진출한 경우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록 밴드 X재팬의 리더였던 그는 SM엔터테인먼트가 조직한 록그룹 트랙스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최고의 스타양성소와 음반기획자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SM엔터테인먼트와 하야시의 ‘합종연횡’은 아시아 연예산업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아시아의 스타 지망생과 아시안 스타, 그리고 음반 관계자들이 한국 시장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지만 한국 시장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다. 지난해 12월31일, 일본의 인기 그룹 스맙의 멤버인 초난강(일본명 구사나기 쓰요시)은 홀로 한국을 찾았다. 한류 붐으로 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에서 화려한 세밑을 보내는 동안 그는 조용히 혼자 새해 카운트다운을 해야 했다. 그는 몇년 동안 한국 진출을 꾸준히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오른쪽 인터뷰 기사 참조).

초난강의 사례는 한류를 일으킨 아시아 대중 문화의 종주국답지 않게 한국 연예계가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탤런트 유 민과 그룹 슈가의 아유미를 제외하고는 한국 연예계에 안착한 아시안 스타는 거의 드문 형편이다. 초난강 역시 한국에서 싱글 앨범을 발표하고 한국어 영화까지 제작해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한국팬들의 반응은 썰렁한 편이다.
한국 팬 반응 아직은 ‘썰렁’

아시아의 스타 지망생들이 한국에서 데뷔하고 아시안 스타들이 한국에서 보폭을 넓히는 ‘역한류’는 한류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교류가 한류에 대한 현지의 반발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가 재확장되면서 타이완·중국·일본 등에서 한류에 반발하는 기류가 거세지고 있어, ‘역한류’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류를 측면 지원하고 있는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은 지난 연말 <아시안 송 페스티벌>을 열어 일본 중국 타이완 태국 베트남 가수를 초청했다. 이 행사는 국내보다 초청 가수들의 출신 국가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지 언론사들은 자국 가수들이 한국에 진출한 것에 큰 비중을 두고 행사를 소개했다. 재단의 김양래 사무처장은 “대중 문화 교류는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진정한 문화 교류는 시장 원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원이 필요하다. 올해 아시안 스타 초청 행사를 확대할 예정인데, 먼저 해일 피해를 겪은 인도네시아 가수들을 초청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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