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자파’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 이문재 (moon@sisapress.com)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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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기를 즐기는 한 친구가 “우리는 모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현무암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전자레인지·헤어드라이어·컴퓨터·핸드폰 등 전자 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때와 장소와 방향을 가리지 않고 몸을 ‘관통’하고 있지 않느냐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전자파 스트레스가 인간의 몸을 현무암에 빗대게 한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일리노이 주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교내에 깔린 무선 랜 네트워크가 학생들의 건강에 위협을 준다며 학교측을 고소했다. 풍수가 강조하는 기(氣)와 수맥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이 있는 한국인들의 전자파 강박증은 한층 심해 보인다. 임신부용 옷에서부터 벽지·장판·요에 이르기까지 전자파를 차단한다는 상품이 꼬리를 물고 시판되고 있다.

지난 10월24일에는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은일·최재욱 교수팀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혈액 속의 면역세포 DNA에 손상을 입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핸드폰 전자파가 질병의 직접적 원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이번 연구는 전자파에 대한 강박증을 새삼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의 일상적 삶은, 태양에서도 전자파가 나온다는 과학 상식과 ‘우리 몸은 구멍 뚫린 현무암’이라는 과장법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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