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전성 시대 아저씨는 착잡하네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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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리처드 내한 공연 때 환호하는 ‘아줌마 팬’들.
아저씨는 착잡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와서 젊은 배우를 칭찬한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섰을 때,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보느라 알은 체도 하지 않는 아줌마가 야속했습니다. 40대 중반으로 들어선 아저씨는 잘 알지도 못하는 권상우가 괜히 밉기만 했습니다.
아저씨는 어린 시절, 젊은 어머니가 아줌마로 돌변하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물건값을 깎았고, 버스에 자리가 나면 쏜살같이 달려가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서면, 어머니는 건장한 사내였습니다.

아줌마들은 1970년대 치맛바람 시대를 거치며 입사(入社) 과정을 거쳤습니다. 치맛바람은 자아 발견 혹은 자기 표현으로 성숙했습니다. 나훈아·조용필 콘서트에 이어, 2년 전 월드컵 때, 아줌마들은 마침내 오프 사이드라는 난해한 축구 룰을 이해하면서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오프 사이드’를 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아줌마 팬덤이 일상화한 것입니다. 팬덤이란, 열광자를 뜻하는 ‘패너틱(fanatic)’에 세력권을 이르는 ‘-덤(-dum)’을 붙인 조어로, 특정 스타와 장르를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에서부터, 팬들의 의식 세계까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아줌마 팬덤을 놓고, 중년 여성들이 대중 문화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대중 문화의 당당한 파트너로 거듭났다고 반가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욕구를 사회적으로 세련화하지 못한 채, 대중 스타를 애완 동물로 격하시킨다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아저씨가 보기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공교육이나 지역 자치, 생태 환경·평화 운동 분야에서는 아줌마들이 왜 ‘극성’을 부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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