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호 ‘문화 비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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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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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호에 실린 서동욱씨의 문화 비평 ‘새로운 인종주의는 가라’에 대해 이견이 있어 적는다. 서동욱씨의 글을 문제 삼고자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비평가들이 비평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주관적 판단과 부적절한 예증을 통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행위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비단 서동욱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가장 최근에 실린 글이 그의 글이었을 따름이다. 다른 하나는 서동욱씨가 서구 사대주의와 인종주의라는 중요한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가 한국 사회의 서구 지향적 사대주의와 인종주의를 비판하며 든 예들이 부적절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로 코기토 명제와 관련한 철학 수업의 예를 보자. 한 학생이 유럽 어느 대학 철학 수업을 듣는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서양 철학을 이해하겠다는 데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서양 철학의 중요한 근간인 코기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학생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두 번째로, 어느 박사 학위 소지자의 인종주의적 발언에 대해서 말한다면, 모름지기 비평이란 이름이 붙은 부류의 글을 쓰면서 아무개가 이렇게 말했으니 그 아무개가 속한 사회의 사람들은 다 이렇다라고 글을 쓰는 것은 참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냥 아무개일 뿐이지 그 사회의 보편적인 생각을 대표할 수 없다. 세 번째로, 화장품 선전의 예를 보자. 서동욱씨는 한국에서 화장품 선전을 할 때 백인만을 모델로 쓴다고 썼다. 나는 흑인이 많이 사는 프랑스에서 여러 해를 지냈지만, 프랑스의 어떤 화장품 광고에서도 흑인 여성을 모델로 기용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이는 화장품 광고의 특성 때문이지 인종주의나 서양 미인을 열망하는 한국의 사대주의 경향과는 무관한 일이다.

서동욱씨는 이런 예들을 열거한 후 ‘부끄럽게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양의 새 인종주의는 우리 자신을 통해 도래한다’고 고백(?)했다. 우선 나는 인종주의, 좀더 정확히 말해 인종 차별주의의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인종주의란, 인종들 간에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주장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여론화하려는 행위이며, 이러한 주장에 기반해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특정한 인종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억압하려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의에 근거할 때, 한국 사회에서 흑인 또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과, 그러므로 한국인이 인종주의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국에 체류하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가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한국인들, 또는 거리의 홈리스들을 평등하게 대접하고 있는가? 나는 이런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인종주의의 문제로 여론화하는 행위야말로 인종주의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해, 노동자의 권리를 착취하는 사업주들의 문제로 이해해야 더 정확한 것이 아닐까.

김태훈 (hoon@worldline.co.kr)정부, 매향리 사건 해결에 적극 나서야

제554호 시사 안테나 매향리 사건 기사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픔을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 정부 및 군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에 더욱 속이 상한다. 매향리 주민들이 그동안 겪어온 고통을 정부 당국이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피해 보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변건수 (인천시 부평구 일신동 풍림아파트)
표지 양담배 광고 꼭 실어야 하나

정기 구독자는 아니지만, 약 3년 동안 매주 빠짐없이 <시사저널>을 사서 보는 독자이다. 그동안 <시사저널>을 보아왔지만, 제556호와 같은 표지는 처음 보았다. 미국에서도 담배 광고는 다소나마 규제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표지 모양을 바꾸면서까지 양담배 광고를 꼭 실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신충식 (부산시 연제구 거제4동)

‘인터넷 속의 여성’ 다양하게 조명

제555호 특집 ‘인터넷 날개 달고 여성이 훌훌 난다’ 기사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해 자아 실현과 사회 진출을 모색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여심(女心)을 잡아두려는 여성 전문 웹 사이트가 계속 개설되어 컨텐츠 전쟁 또한 치열해졌음을 엿볼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다소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이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화의 섬세한 감각과 꼼꼼함 등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기사였다. 다만 한 가지, 우리나라 여성들의 이러한 모습이 정보화 선진국의 여성들과 비교해 어떠한 수준이며, 정보화 마인드는 어느 정도인지도 함께 분석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황준철 (대전시 서구 내동 코오롱아파트)

‘의미 있는 특종’ 싣는 <시사저널>이 좋다

<시사저널>을 정기 구독한 지는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10년 넘게 읽어온 독자이다. 그런데 한동안 선정적인 기사 때문에 실망한 적도 있고, 다른 시사 주간지와 차별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재구독을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시사저널>을 좋아하는 이유는 선정적인 ‘특종’보다는 의미 있는 ‘특종’을 싣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기사로 객관성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557호의 송탄 미군 기지 현지 취재 기사(38~41쪽)도 이런 이유에서 적절하게 실린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매체들이 주한미군을 한쪽으로만 들여다보고 판단할 때, 다른 쪽에서 판단할 기회를 제공한 것은 훌륭하다고 여겨진다. 제551호에서 노무현 의원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것, 제552호에서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다룬 것, 제553호에서 주한미군 문제와 한·미 행정협정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 등이 나는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내가 <시사저널>에 바라는 것은 ‘놀랍고’ ‘선정적인’ 기사가 아니다. 모두가 아는 일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재구독하겠다고 결정했다.

최학문(harkmoo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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