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는 사람들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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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대 전만 해도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소박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었습니다. 귀한 아들이면 쌀 한 가마니를 주고 평생 사주를 받아오기도 했지요. 아기 이름으로 저금통장을 만들어주는 것은 근대화 초기였고, 기자의 기억으로는, 육아일기를 전해주는 문화는 1980년대에 등장했습니다. 캠코더에 이어 디지털 카메라가 일상화하면서 출산 전후의 기록 또한 인터넷으로 옮아갔습니다.

지난 3월28일 일요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의 한 산자락. 신혼부부 2백쌍이 모여 경사가 급한 국유지 6천 평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병에 걸린 리기다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잣나무와 주목 3천 그루를 심었습니다. 올해로 20년째, 유한킴벌리(사장 문국현)가 마련한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였습니다.

신혼 부부여서 그랬겠지만, 임신한 신부들이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넷을 보고 참가했다는 박창길·이미경 씨 부부(사진)는 지난해 4월에 결혼해, 오는 5월 첫아이를 낳습니다. 부부는 “곧 태어날 아기가 우리가 심은 나무처럼, 숲처럼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디 박씨 부부뿐이겠습니까. 이 날 참석했던 2백 쌍, 아니 1985년부터 이 행사에 참여한 6천여 쌍의 부부가 새로 태어난 아이, 또는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무를 심었습니다.

매년 자녀의 생일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어린 자녀에게 삶의 지침이 될 만한 생일 선물을 마련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혼 부부들이 나무를 심는 산비탈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옛 어른들이 신생아를 위해 나무를 심은 깊은 까닭을 말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우여곡절을 겪을 때, 부모가 생일 선물로 심은 나무를 찾아갈 수 있다면, 그 아이는 함부로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는 홀로 서야 나무입니다. 그렇게 홀로선 나무들이 더불어 푸른 숲을 이룹니다. 4월입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위해, 또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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