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 회장이 간과한 것들
  • ()
  • 승인 1997.05.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의 기고[제390호]를 읽고, 그의 견해와 다르게 생각하는 점이 있어 말하고자 한다. 이 글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근원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정작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책임져야 할 기업인의 자기반성적 자세가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은 부분적으로 옳은 지적을 담고 있지만, 진정한 개혁의 대상인 기업인들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경영 철학 부재다. 예를 들어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외국 경쟁 기업의 제품을 수입하여 파는 행위 따위이다.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얻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기업 스스로 국내 시장을 외국 기업에 내주는 꼴이나 다름없다. 둘째, 기업들의 취약한 재무 구조이다. 미국 기업은 자기 자본 대 부채 비율이 50%만 넘으면 적신호로 여기고 금융기관은 불량 기업으로 등급을 매겨 대출을 꺼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우리 기업은 최근 여러 부도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재무 구조가 너무나 취약하여 지금과 같은 세계 경쟁 시대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금리 부담이 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개인적으로 축적한 부는 그대로 두고 국민이 낸 세금과 저축으로만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셋째, 무분별한 기업 확장이다. 각종 자료는 재벌의 몸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업종 전문화는 팽개치고 무차별적 몸피 불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는 우리 기업이 전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로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불황을 단순히 고비용 저효율론으로 치부해버리는 인식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의 원인을 고비용, 특히 임금에 돌리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한국의 특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불황을 노동자들 탓으로 돌리는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 70년대 성장주의의 한 표현일 뿐이다. 경제가 힘들 때 그 구조적 모순을 철처히 규명해 제거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항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탓하거나 책임 전가를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곪은 상처를 과감히 수술하는 지혜이다.

최원성 (인천시 서구 가정동)

푸른 숲 만들기에 정부 적극 나서야

‘식목일이 더 슬픈 나무들’[제389호]을 잘 읽었다. 전남 장성에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조림단지를 조성한 고 임종국 독림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군청이 세운 그 분의 공적비가 나무와 함께 잘 보호되기를 바라며, 휴양림 조성 사업도 빨리 이루어져 자연 탐구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주제는 자연과 환경이다. 울창한 숲이 주는 혜택은 그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정부나 여러 매스컴도 말로만 조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말고 전국 산야 여기저기에서 고군분투하는 독림가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식목의 달과 때를 같이해 시의 적절했으며, 독림가의 고통스런 현실을 잘 말해 준 기사였다.

김명곤 (충남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

최근 사태에 언론 책임도 커

커버 스토리 ‘정권 말 언론, 악어의 눈물’[제390호]은 어지러운 정국 상황 속의 언론 모습을 잘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기사에도 나왔듯이 지금 우리나라의 어려움은 김영삼 정부에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그러한 정권을 만드는 데 일조한 언론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여야 할 언론이 다른 이들은 비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잘못은 시인하지 않고 감추려 해 왔다고 본다. 기사는 이같은 문제점을 시기 적절하게 잘 지적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우리 언론도 보수의 틀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진보와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선진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손경환 (부산시 남구 대연동)

정권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비판한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다. 정권 말기 레임 덕 현상에 따른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시점에서, 언론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김영삼 정권이 몰락한 이유와 정권에 기생하고 있는 언론의 이중성을 적절히 꼬집어 주었다. 또 이효성 교수의 언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감 없이 게재되어 흡족했다. 언론이 언론을 비판하는 <시사저널>의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 아쉬운 점은, 기사에서 지적한 언론이 이른바 ‘잘 나가는’ 몇몇 신문에 국한된 것과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 3사의 교묘하고 지능적인 정치 플레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이었다. 앞으로도 스스로는 물론, 다른 언론의 자세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나가기 바란다.

김종화 (경남 창원시 도계동)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