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되려면 대통령 말 잘 들어야…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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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동영·김근태 의원과 김혁규 당선자
청와대가 지난 5월2일 개각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 아직 대통령 탄핵이 풀린 것도 아닌데, 여권 안에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청와대는 특히 ‘김혁규 총리, 김근태 통일부장관, 정동영 과학기술부 또는 정보통신부 장관’ 식으로 특정 부서까지 거론되어 해당 부서를 뒤숭숭하게 만든다며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권 인사들을 차례차례 청와대로 불러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집권 2기를 둘러싼 추측성 보도가 꼬리를 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동안 여권 핵심부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종합해 보면, 노대통령이 몇 가지 인사 원칙을 세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첫째, 당 결속을 위해 당분간 당내 요직은 관리형에게 맡긴다. 둘째, 차기 주자군의 경력 관리를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 셋째, 당·정 협조를 극대화한다.

결국 정동영·김근태·김혁규 등 차기 주자들은 당에 두지 않고 모두 입각시키겠다는 것이 노대통령 생각인 듯하다. 여기에는 차기 대권 주자간 레이스가 본격화하는 2006년 후반기까지는 자신이 확실하게 정국 주도권을 틀어쥐고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정의장은 아직 마음 못 정해

이 때문에 김근태 원내대표는 일단 입각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당초 본인 욕심대로라면 1년 더 원내대표를 한 후 입각해서 행정 경험을 쌓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통령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거대 여당의 원내대표는 일생일대 한번 올까 말까 한 귀한 기회로, 김대표로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가 역력하다.

정동영 의장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의장 직을 그만두는 것은 분명하다. 그 시기를 놓고도 일각에서는 6월5일 재·보선 이후라는 전망이 많은데, 정의장은 총선 때 공언한 대로 노대통령 복귀 후 바로 의장 직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의장 주변에서는 내심 승산이 별로 없는 부산시장·경남도지사 선거의 총대를 메는 데 대한 부담도 털어놓는다.

의장 직에서 물러난 다음 1년 정도 쉬면서 개인 공부를 할지, 아니면 노대통령 프로그램을 따라 입각할지도 유동적이다. 정의장 본인은 당분간 쉬면서 자기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지만, 자칫 그동안 노대통령이 보내준 신뢰를 거부하는 모양새로 비칠까 봐 점차 입각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는 현재 총리 0순위다. 노대통령이 그의 행정 경험을 높이 사고 있는 데다, 6월5일 부산시장·경남도지사 보궐선거를 위해서는 경남 총리 카드가 적잖이 도움이 되리라는 시각에서다. 하지만 경남 대통령에 경남 총리라는 편중 시비에다 한나라당의 ‘배신자 총리 불가론’ 같은 악재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한나라당 안에서는 김혁규 반대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권 일각에서 한명숙 전 장관, 조세형 전 주일대사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 일정으로 보면 개각은 한 달 뒤인 6월 중순께나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5월 중순께 탄핵 심판이 결론 나 노대통령이 돌아온다고 해도 6월5일 17대 국회가 개원해야 차기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거쳐 인준 표결을 하고, 그 이후 차기 총리의 제청으로 새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정상 순서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혁규 총리 카드를 밀어붙일 경우 6월5일 재·보선 전에 미리 총리를 지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청와대가 아무리 입단속에 나서도, 이들 세 사람의 거취는 대통령의 차기 구상, 본인들의 대권 프로그램과 맞물려 끊임없이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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