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폭력 만화 폐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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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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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 특파원의 칼럼 ‘일본 만화가 무슨 죄를 졌기에…’[제404호]를 읽고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욕구를 갖고 산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든, 사회 발전에 따른 사회적 욕구든 간에. 그러나 그 욕구가 타인의 안녕과 행복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필자의 말처럼 폭력에 대한 욕망은 무한 경쟁 사회가 낳은 욕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정당해질 수는 없다. 폭력에 대한 욕구는 그 자체가 순화·억제되어야 할 것이지, 만화 등을 통해 대리 만족된다고 다행스럽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폭력 만화는 많은 청소년에게, 세상은 경쟁의 연속이며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승리할 수 있고 그렇게 승리한 삶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삶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폭력 확대를 막는 예방책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폭력 만화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별개 문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폭력 만화가 결코 폭력 확대를 막는 예방책이 아니라 폭력을 미화하여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은정 (전남 여수시 문수동)

일본 만화를 많이 접해본 고등학생으로서, 폭력 만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그에 따른 욕구를 가중시킨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 만화 <슬램덩크>를 보고 농구를 시작했고,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엔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놀라운 실력을 갖기를 바라는 친구들이 많다. <드래곤볼>을 보면서는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했고 또 태산만한 바위도 부숴버리는 초능력을 갖는 꿈을 꾼다. 만화에서 주인공이 멋진 발차기를 하면 나도 그렇게 몸을 날리고 싶다. 폭력 만화는 대부분 아직 가치 판단이 명확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읽히고 있으며, 청소년들은 만화 속 장면을 머리로 그리며 그대로 흉내내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만화는 적어도 청소년에게는 그냥 만화가 아니다. 내용에 따라 희망을 가질 수도, 폭력 성향을 가질 수도 있는 교과서인 것이다.

윤 호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3동)

세종문화회관, 시스템 정비 시급

‘세종대왕도 기가 막힐 예술의 무덤, 세종문화회관’[제404호]은 시원스럽고 시의 적절한 기사였다. 왜 지금껏 언론들이 세종문화회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모른 체해 왔나 의구심이 들었다. 같은 호 바로 앞면에 실린 ‘시스템을 바꾸면 탈출구가 보인다’는 내용은 세종문화회관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대부분이 ‘견제받는 시스템’을 아예 외면하고 있고, 세종문화회관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20년 동안 예술의 무덤으로 전락해온 것이다. ‘무덤’이라는 말은 세종문화회관 산하 각 예술단이 내세울 만한 레퍼토리를 만들지 못한 데서 나온 표현인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박용구 (예술 평론가)

단속·처벌 위주 청소년 대책 한심

학원 폭력 조직 단속과 관련한 기사[제403호]는 강경 단속을 위주로 한 현상황을 적절히 지적한 기사였다. 나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상담팀 팀장으로 일할 때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천여 건에 이르는 학교 폭력 관련 상담 전화를 받았다. 그 중 폭력 서클이나 범죄 단체에 해당하는 사례는 극소수였다. 대부분 학내나 학교 근처에서 몇명이 다른 1~2명을 괴롭히는 형태였다. 그렇더라도 이런 괴롭힘은 어리고 예민한 학생들에게 심각한 어려움을 주고, 가해 학생에게도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계기를 주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 대책이 단속과 처벌 위주였던 것과, 우리 사회가 무반응·무력감으로 일관한 것은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 학교 폭력에 관한 그동안의 접근 방법은 우리나라 청소년 정책이 얼마나 빈곤하고 무능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단속과 처벌은 대책의 일부분이어야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도를 중심으로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유경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다시 부는 한복 바람 다행스러워

그동안 한복은 특별한 행사 때나 등장했을 뿐 여러 특징 때문에 대중적인 옷으로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한복 붐이 일면서 개랑 한복이 다양하게 등장했다[제403호]. 한복의 고유한 특징을 지키면서도 소재와 색상을 다양하게 해 선택할 폭을 넓힌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 못지 않게, 꾸준한 연구를 통해 이를 현실에 맞도록 개발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현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바로잡습니다

제406호 100쪽 문화재 기사 중 맨 왼쪽 사진 위와 아래 설명이 서로 바뀌었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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