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규 의원의 적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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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규씨가 총리로 지명되면 교포 출신에 대한 악평과 미국에 대해 식어가는 민심과도 만날 것이다.
미인들이 누구와 결혼하는지를 보면 세속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한때 똑똑하고 예쁜 여성들이 미국 교포라고 하면 맥을 못 추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까지도 일류 대학을 나온 재원이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름을 날리던 여배우들이 전도 유망한 재미 교포 사업가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교포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속아 신세를 망친 여성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네 살림살이가 점점 나아지면서 미국 교포에 대한 환상도 깨지기 시작했다. 전도 유망한 사업이라는 것도 대부분 미국 사람들은 번거로워 손대기 싫어하는 세탁업이나 슈퍼마켓 정도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신랑을 따라 미국에 갔다가 너무나 실망해 1주일도 안되어 보따리를 싸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요즘에는 미국의 청년 실업가와 결혼하는 여배우를 좀처럼 보기 힘든 형편이다.

존재가 잊혀가던 미국 교포 사업가들이 다시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였다. DJ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도움을 주었던 미국의 지인들이 그가 집권한 뒤 중용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이다. 박씨는 DJ 임기 내내 두터운 신임을 받아 소통령이라고 불렸고, 유씨는 한때 DJ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대권 도전을 준비할 정도로 잘 나갔다. 그밖에 DJ의 아들들 뒤를 봐주었던 미국통 최규선씨나 김영완씨도 권력의 배후에서 무시 못할 힘을 휘둘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의 말로는 좋은 편이 못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스카우트되어 경남도지사를 세 번 지낸 미국 교포 출신 김혁규 의원을 신임 총리로 지명하려 하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일부까지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교포 출신 정치인들의 특징이 보스의 신임은 두텁게 받는 반면 주변에 우군을 별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인데, 김의원의 처지도 비슷하다.

노대통령이 지명을 강행하면 김의원은 인사 청문회에서 야당의 거센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교포 출신 ‘전임자’들에 대한 악평과 미국에 대해 점점 식어가는 민심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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