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없다
  • 강수돌 고려대 국제정보경영학부 교수 ()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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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시작된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화:리더십의 새 방향'이라는 첫 회의 명칭이 말해주듯 신자유주의 세계화 논리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해 오면서 2001년 1월 말 제31차 회의를 열었다. 빌 게이츠·조지 소로스·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비센테 포스 멕시코 대통령·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 등 2천여 명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면 이번 다보스 회의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무엇인가?

첫째, 회의 초기에 발표된 환경지속지수(ESI) 순위표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대기오염도·토질오염도·위생 관련 질병 발생도 등을 기준으로 하여 세계 1백22개국을 비교 조사한 결과이다. 이것은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해온 국가경쟁력 순위보다 훨씬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돈벌이 경쟁이 아니라 삶의 질 경쟁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회의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포용' '기업 양심'이라는 화두가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특히 1999년 12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을 저지하려 한 세계 시민의 강력한 저항 이후 워싱턴·멜버른·프라하·서울 등지로 이어진 저항의 세계화에 대한 (세계화 전도사들의) 대응 전략을 반영한다. 특히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한 '세계 협정(Global Compact)'은 이런 분위기를 제도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야수'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더 '인간화'하기 위해 천 개 정도의 세계적 기업들이 환경·노동·인권 등 아홉 가지 세계 기준을 준수하도록 2002년까지 협정을 맺자고 제안했다.

셋째, 그렇다고 해서 이번 회의가 '위로부터의'세계화 담론을 버린 것은 아니다. 이미 1999년 말에 시애틀에서 좌절된 뉴라운드(다자간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재개해 조기에 구축하자고 선언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 선언은 자본과 기술은 물론 1·2·3차 산업의 모든 상품을 완전히 자유롭게 개방·거래하고, 규제를 없애자는 것이다. 특히 10년 간의 일본 경제 불황과 최근 미국 경제의 하강 기류가 세계 경제를 침체기로 몰 것이고,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강화될 것이기에, 뉴라운드(밀레니엄라운드)가 더 절실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지구의 정반대에 위치한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는 세계 시민 5천명이 모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위로부터의 세계화·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며 세계사회포럼(WSF)을 열었다. 이들은 '세계화한 인간'을 모토로 여성·외채·어린이 노동·인종·유전자 변형·환경 파괴 등 여러 주제를 깊이 논의했다. 이들의 문제 의식은 한마디로 현재의 세계화 물결이 결코 자연 법칙이나 정언 명령이 아니라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새로운 전략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브라질에서 보여준 저항과 대안을 세계화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스위스에서 제시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더욱 힘들다고 본다(물론 인간의 '탈'을 쓴 자본주의는 '식은 죽 먹기'이지만). 왜냐하면 자본주의로 하여금 인간의 얼굴을 취하게끔 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바로 그 자본주의의 파괴적 생산성·경쟁력으로 인해) 갈수록 훼손되고 협소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세계사회포럼과 같은 노동의 저항이 있는 한 자본은 영양 실조로 비틀거리겠지만 노동은 저항 속에서 새 생명력을 얻는다는 이 비밀스런 진실을 세계 노동자들이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희망은 있다. 우리도 이 참에 '한반도사회포럼'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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