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경착륙 '방어벽'을 구축하라
  •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 승인 200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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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경착륙에 따른 피해를 줄이려면 무엇보다도 현대 문제 등 우리나라 금융 시장의 불안전 요인을 신속히 제거하고 금융 구조 조정을 서둘러서 외부 충격을 흡수할 여력을 길러야 한다.

사진설명 ⓒ이건모 그림

미국 경제의 향방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주가 폭락은 전세계 주식 시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미국 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리의 수출은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미국 주가와 경기의 향방이 커다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다수의 공신력 있는 기관들은 미국 경제가 연착륙하리라고 예상한다. 기술적으로 '2분기 이상 연속되는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경기 침체(recession)는 오지 않으며, 올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지난 주 다우존스 지수가 10000 이하로 떨어지고 나스닥 지수 2000선이 붕괴되면서 미국 경제 경착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만약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로 접어들면 우리는 경제 정책 운용 방침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에 사상 최장 기간 경기 팽창을 이루어냈다. 이른바 신경제라고 불리는,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투자와 주식 시장 활황 및 안정된 물가를 토대로 근 10년 동안 연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은 IT 혁명에 의해 미국 경제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으며, 경기 변동 현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필자는 이러한 견해가 터무니없음을 주장해 왔을 뿐더러, 올해 미국의 경기 후퇴가 연착륙보다는 경착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보는 입장이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하리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얼마 전까지 팽배했던 미국 경제 영구호황론 때문이다. 신경제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부풀면서 미국 경제에는 거품 경제의 전형적 현상들-급격한 통화 팽창과 주가 상승, 과잉 투자와 지나친 경기 팽창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의 주가는 엄청난 거품 가격을 형성했다. 한 예로 1999년에는 한 온라인 여행사의 주가 총액이 미국 3대 항공사의 주가 총액을 능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거품은 붕괴하기 마련이어서 지난해부터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주식 시장은 전체적으로 심각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기업 이윤이 감소하자 기술 관련 투자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로 꾸준히 증가하던 가계의 소비 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주가 하락에 의해 미국 가계 부문의 순자산이 지난해에는 2% 줄어들어 5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를 기록했다. 이제 주가가 떨어지고 경기 후퇴가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이 그동안 누적된 채무에 부담을 느끼고 급격하게 허리띠를 졸라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기 후퇴를 가속화할 것이고, 그것이 또다시 기업과 가계의 채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면서 경착륙을 초래할 수 있다.

예전부터 미국 경제가 재채기를 하면 한국 경제는 감기 몸살을 앓는다는 말이 있었다. 과거에는 이러한 연결 사슬이 무역에 국한되었는데, IMF 위기 이후 이루어진 자본 시장과 금융 시장 개방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현대 문제 등 우리나라 금융 시장의 불안정 요인을 신속히 제거하고 금융 구조 조정을 서둘러서 외부 충격을 흡수할 여력을 길러야 한다.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억제할 수단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가 잘만 하면 미국 경제의 위기로 인해 갈 곳이 없어진 투자 자본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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