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굳세게 버티더니만
  • (sms@e-sisa.co.kr)
  • 승인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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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남 검찰총장이 드디어, 오랜 진통 끝에, 물러났다. 이틀에 걸쳐 청와대가 간곡하게 설득한 결과였다. 국민 여론도, 정치권의 압박도 꿋꿋하게 이겨낸 그였다. 하기야 본인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저항을 시도한 이들도 있거늘, 본인도 아닌 동생의 잘못으로 물러나는 것이 얼마나 억울했을 것인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검찰 조직에는 ‘그를 아끼고, 그가 아끼는’후배들도 많았다. 그래서 아마 그토록 오랫동안, 굳세게 버티었을 것이다.



어디 신총장만인가. 현정권에서 비리를 저지르거나 스캔들에 연루된 공직자들은 한결같이 ‘너무나 결백하기에’ 또는 ‘나를 믿고 따르는 조직을 위해’ 결코 물러날 수 없다고 버텼다. 물론 부패방지위원장 내정자였던 김성남 변호사 같은 예외도 있었다. 위(청와대)에서 압력을 넣기도 전에 사퇴를 결심한 그가 내세운 이유는 ‘막 출범하는 위원회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면서 오래 매달리기를 하는 체력장 수험생처럼, 모든 구명 수단을 다 동원해 자리를 보전하려고 애썼다. 조직과 개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그렇듯 버티기 시합에 매달리는 동안 그들이 몸 담은 조직은 더 망가지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을 뿐이다. 검찰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신총장은 검찰 안에서 완전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고, 이미 위기에 처했던 검찰은 국민의 신망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무릇 공직에 몸 담은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깐깐한 기준을 자신에게 들이대고 누구보다도 상황에 민감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공직이다. 조선조 시절 대학자인 퇴계 이 황은 수십 차례 물러나기를 청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국민의 눈으로나 상식의 잣대로나 속히 물러나기를 자청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항변하고 반발하는 희한한 세태. 공직자의 도덕 불감증이 이제 ‘당당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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