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
  • 서명숙 편집장 (sms@sisapress.com)
  • 승인 200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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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부 영화가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기병대(혹은 민병대)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좋은 편’이고, 인디언은 잔혹하고 미개한 ‘나쁜 편’. 숱하게 쏟아져 나온 서부 영화의 구도는 늘 똑같았다.




그러나 미국인이 기록한 인디언 수난사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다오>(디 브라운 저)는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단숨에 깨부순다. 그뿐인가. 위대한 미국의 건국 과정이 기실은 비옥한 땅과 풍부한 금을 차지하기 위해 그 땅의 기득권자인 인디언을 격리, 박해, 더 나아가 멸종시킨 과정이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항한 인디언은 총칼에 죽었고, 투항한 인디언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보호구역에서 굶주려 죽었다. 인디언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애당초 백인들의 머리 속에는 없는 개념이었다.


그 중 인상적인 장면 하나. 인디언 궤멸작전을 지휘하던 셰리던 장군은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한 인디언에게“내가 아는 좋은 인디언은 모두 죽은 인디언이다”라고 못박는다. 죽어야만 비로소 좋은 인디언이 된다! 이 반어적인 표현은 서부 개척 시대에 유행처럼 퍼졌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압박 작전은 그들 선조의 인디언 섬멸 작전을 연상시킨다. 황금 대신 현대판 황금인 석유가 묻힌 땅이라는 점이 다를 뿐. 추적대에 쫓기다 못한 인디언들이 투항했듯, 오랜 경제봉쇄 조처로 지칠 대로 지친 이라크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통해 ‘조건 없는 핵사찰 재개’를 약속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사실상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면서 이를 즉각 수용하지 않으면 군사 공격에 나선다는 초강경 입장이다.


셰리던 장군이 그랬듯, 혹 부시도 좋은 이라크인은 죽은 이라크인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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