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를 테면 짤라라 완벽한 대비책 있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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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돌입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설사 수천명이 해직된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둔 게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강순태 여론국장은 11월15일 파업 첫날 이렇게 말했다. 전공노는 이 날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파업 참가자 전원을 파면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은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해직 후 복직을 기대하지 말라”는 엄포를 덧붙였다. 이상호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은 11월15일 아침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단순 가담자라도 해임하겠다”라고 밝혔다.

파업 참가자 수는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린다. 전공노는 파업 참가 인원이 4만5천명이라고 밝혔지만, 정부는 15일 오후 2시 기준으로 3천2백명 정도라고 집계했다. 전공노측은 “14일 전야제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조합원만 8천명이 넘는다. 정부가 파업 참가자 수를 축소해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복무과 관계자는 “파업 참가 인원은 각 구청·동사무소로부터 무단 결근자를 보고받아 확인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단 구청·동사무소 등의 현장은 별 혼란 없이 운영되어 ‘공무원 대란’은 없었다.

만약 정부측 집계가 맞고, 공언한 대로 파업 참가자에 대해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한다면 3천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해직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1989년 교사 1천5백19명이 해직된 전교조 사태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정작 전공노측은 안전장치가 있다며 놀라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몇 가지 대비책을 세워 두었다는 것이다.

제2의 전교조가 될 것인가

첫째, 해직자에 대해 종전 연봉과 같은 수준의 생활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강순태 여론국장은 “노조가 적립해놓은 기금이 1백3억 원이 넘는다. 이를 해직자 생계를 위해 쓰겠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물적 기반을 준비해 온 것이다. 해직 기금은 과거 전교조가 그랬던 것처럼 남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유지해 간다는 복안이다.

둘째, 해직자들이 각종 노동단체의 상근자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1989년 해직된 전교조 교사들은 대부분 시민단체나 교육단체 상근자가 되었다. 그 분들의 노력으로 도리어 조직 역량이 강해진 측면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교사나 공무원과 같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해직 이후에도 단체 안에서 행정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많다는 설명이다. 박대변인은 “수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해직자들의 존재는 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전공노가 구상하는 ‘해직 시나리오’는 과거 전교조 사태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많다. 실제 노동3권을 요구한 명분을 전교조의 그것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무원 노조와 교직원 노조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전교조 건설 운동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었다. 반면 공무원 노조의 경우 고위공직자 비리 감시·권력 견제라는 대의명분이 좀처럼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한 전공노 간부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일반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너무 좋지 않다. 덮어놓고 공무원이라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공노 강순태 여론국장은 “일단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3권을 얻고 나면 국민들이 노조가 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진지를 쌓아온 전공노의 준비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파업 사태는 파면·해임으로 일단락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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