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을 함부로 보지 말라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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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인기가 더 올라갔습니다. 수도권과 영남 지역의 연탄 공장이나 연탄 보일러 제조업체들은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전국에서 아직도 17만 가구가 연탄을 때고, 연탄불로 비닐하우스 온도를 유지하는 농가도 늘고 있습니다. 살아가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는 증거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서민들의 겨울 채비는 두 가지였습니다. 연탄과 김장. 광에 연탄과 김장독이 그득하면 가족 모두가 든든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전후해 연탄 아궁이와 연탄 보일러는 석유나 가스 보일러로 바뀌었습니다. 연탄 공장은 도시 밖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가스나 석유 보일러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동화한 첨단 보일러일수록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연탄은 인간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하루에 두 번 갈아주어야 했고, 바람 구멍을 잘 조절해야 했습니다. 잠깐 방심하면 이내 꺼졌습니다.

연탄에는 구멍이 있습니다. 연탄은 그 구멍을 통해 밑불이라는 외부를 받아들입니다. 구멍, 즉 틈이 없는 연탄은 불을 피우지 못합니다. 또 새로 불이 붙은 연탄은 반드시 밑불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세대 교체, 순환의 원리가 엄연합니다. 연탄불은 삶과 죽음의 엄연한 비유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짧은 시 앞에서 성장기에 한두 번씩 연탄 가스를 마셔보았을 기성세대, 한밤중에 일어나 연탄불을 갈아보았을 중년들은 이제는 찾아갈 수 없는 긴 겨울날을 떠올릴 것입니다.

최저 온도가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는 요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며 누가, 또 무엇이 ‘연탄재’인지, 그리고 또 누가, 무엇이 연탄(‘뜨거운 사람’)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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