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철학자가 나왔으면
  • 탁석산 (철학자) ()
  • 승인 200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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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철학자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한다. 이 대회는 동서양 문명의 공존과 융합을 모색한다고 전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철학회가 회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대회 개최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열매를 맺었나 보다.

나는 ‘세계’가 들어가는 대회나 총회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진정한 대회라면 국력이나 정치에 오염되지 않는 승부가 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육상이나 수영과 같은 기록 경기나 바둑 정도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더욱이 세계 총회라는 것은 대개 관광하는 핑계를 제공할 뿐 실제 영향력이나 역할이 없어 보인다.

예술이나 인문학의 경우는 세계 대회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고, 총회를 연다고 해도 이미 알려진 정보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게 될 것이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논문을 구하지 못하거나 어떤 철학자가 중요한지 혹은 철학의 세계적 흐름을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에 영향 받은 것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성과 없는 일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 세계철학자대회 준비 과정에 투입될 많은 교수와 박사 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에 반해 서신에서 밝힌, 현실에서 출발하여 자생적 철학을 창출하겠다는 다짐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구호야 철학 교수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는 것이어서 전혀 신선하지 않다. 그리고 돌파구라고 제시한 것이 오는 10월에 있을 한국철학자대회에서 ‘탈민족주의 시대의 민족 담론’을 주제로 내걸었다는 것이다. 역시 철학자들답다. 철학자들끼리 모여서 신문 학술 면을 장식할 정도의 모임을 가지려는가 보다. ‘신문에 크게 나왔다니까. 역시 아는 기자가 있어야 돼. 능력 있는 회장단이야.’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나는 철학자의 현실 참여가 텔레비전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텔레비전의 각종 시사 토크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만금·정치 자금·‘몰카’·노사 문제 등이 논의될 때 철학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환경 전공 철학자가 얼마나 많은가. 또 사회철학 전공자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신문에 칼럼을 쓸 뿐 텔레비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철학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물리친다’는 것은 가장 나은 의견을 내놓음으로써 철학이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을 말한다. 계속 승리를 거둔다면 철학자는 원하지 않아도 현실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철학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노조의 경영 참여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토론에서 노·사·정 모두를 인도할 큰 원칙을 제시한다면 철학의 주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토크쇼는 철학자를 찾지 않는다. 아마도 제작자 머리에 철학자가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철학회는 비장한 각오로 전담 팀을 구성하여 입담 좋고 논리 정연한 선수를 선발한 뒤 방송 전문가들을 동원해 가혹하게 훈련하고, 출연이 성사되도록 적극 로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비철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아탑에서 고고히 진리를 탐구하면 그만이지 얼굴에 분칠까지 해가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이 금방 나올 것이다. 하지만 현실 참여란 발에 진흙을 묻혀야 시작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링 밖에서 팔짱을 끼고 서서 훈수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철학 교수들은 술자리에서 아주 예리하게 현실을 비판하고 훌륭한 대안도 많이 이야기한다. 즉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것이다. 누가 그 멍석을 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철학회를 맡고 있는 지도부가 할 일이다. 지도부가 그 정도 능력도 없겠는가. 문제는 그런 의지가 있느냐이다. 외화내빈인 세계철학자대회를 개최하는 일에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정열과 노력을 텔레비전을 장악할 프로젝트에 쏟아 붓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철학도 실용적으로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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