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이 바람 나는 까닭
  • 오한숙희 ()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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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람 난 가족>이라는 영화가 장안의 화제인 모양이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는 포르노 수준의 장면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뜬 마음이었는데 나올 때는 씁쓸하거나 슬픈 마음이었다는 것이 보고 온 이들의 중평이었다. 지금껏 가족을 주제로 다룬 영화들이 어쨌거나 결국은 해피엔딩이었던 것에 너무 길들여져서였을까.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한 가정이 물에 소금이 녹듯 사라지고 마는 것을 목도하기가 사람들은 힘겨웠던 모양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앞집 여자>라는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마지막 회였다. 나와는 정반대로 여태 개근 시청자였다가 마지막 회만 못 본 친구 하나는 내가 전해준 드라마의 결론에 보통 실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부부의 삐걱거림과 ‘바람’을 동시 다발적으로 터뜨려놓고는 부부 관계의 질적 변화 과정 없이 막판에 몽땅 원위치시켜 버린 것은 ‘시청자를 우롱한 처사’라고 핏대까지 올렸다. 아마 그 친구는 그 중 하나라도 선수 교체로 더 행복해지기를 내심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 기대 속에는 결혼 생활에 이렇다 할 문제는 없지만 막연한 체증과 권태가 안개처럼 깔려 있는 우리네 보통 부부의 자화상이 들어 있을 터였다.

불협화음 드러내기를 어찌 두려워하는가

가족은 우리에게 성역이었다. 그 가족이 오늘날 도마에 올라 있다. 가족 성원들의 흔들림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박살이 나면 개운치가 않고, 그렇다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제자리를 찾아가면 맥이 빠져 하는 것을 보면서, 가족을 도마 위에 올리는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된다.

지금껏 가족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자 최장의 비결은 인내였다. 특히 기혼 여성들은 눈 코 입을 막고 10년 세월을 보내는 것이 결혼의 정규 과정이었다. 요즘은 예서 많이 벗어났지만 ‘여자가 참아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왜 참아야 하는가. 조용한 가족이 곧 정상적인 가족, 나아가 행복한 가족으로 평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 내지 않고 작은 어긋남들을 쌓으며 살아온 가족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약하더라는 문제 의식이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가족이라는 성역과 인내라는 유지 방식에 메스를 들이대게 만든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제 소리를 가진다. 백인백색이라 했으니 저마다의 소리가 다르게 마련이다. 조화를 이루자면 우선 존재하는 소리들이 다 드러나야 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전에 조율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정직하게 두려움 없이 악기마다 제 소리를 낸다. 그 과정을 통해 악기들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비로소 조율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불협화음이야말로 환상의 합주에 필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양상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화의 전 단계로 거쳐야 할 불가피한 불협화음이라 할 수 있다. 유림과 여성계가 대립하는 양상을 띤 호주제 폐지 문제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오랫동안 억눌려 온 가족 성원들의 목소리가 분출된 것이고, 여러 분야의 파업은 그동안 성장 우선 정책에 밀려 분배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들이 내는 제목소리이다. 왜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워졌냐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독재 권력들이 강요해온 조용한 가족, 조용한 사회 우선주의가 이제는 마치 사회 안정의 지표인양 자리잡고 있어 불안감이 증폭되기도 한다.

대립과 갈등이 바람직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막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 대립 양상은 어찌 보면 억압의 세월과 깊이에 비례하는 것일 수 있고, 페어플레이 정신이 게임 경력을 통해 익혀지듯이 제목소리 내기 또한 거듭되는 과정에서 방법론적으로 성숙될 것이다. 조용히 있다가 바람에 날아가기보다 성장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가족과 사회가 더 바람직한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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