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권하는 사회
  • ()
  • 승인 2003.09.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30, 40대가 이민 행렬에 끼어들게 되는 가장 큰 동기는 교육 문제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정치 사회적 문제이고, 그 핵심에는 학벌로 다져진 기득권 구조가 놓여 있다.”

홈쇼핑에서 이민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도 기발하지만,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캐나다 이민 박람회도 대성황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조국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대부분이 한창 일을 해야 할 30, 40대 연령층이라고 한다. 또한 얼마 전에는 종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이 한국 정부의 무성의를 비판하면서 국적포기서를 청와대에 전달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한국인이기가 싫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이민을 갔지만 이제는 조국이 싫어서 떠나고 있다.

이 모두가 잘못된 정치가 낳은 공동체 파괴 현상의 한 단면이다. 그렇지만 정치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늘도 자신들의 이해관계 속에서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여당은 분당의 길로, 야당은 설득력도 별로 없는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더니, 해임하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을 검토하겠다는 발언까지 당 대표가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 총선 승리를 제1의 목표로 삼는 국회의원들 개인의 심정이 이해는 되지만, 이제 정치는 국민과 무관한 수준 또는 상황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당랑규선(螳螂窺蟬)이라는 말이 있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는 데 정신이 팔려 그 뒤에서 참새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곧 닥칠 재앙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일컫는다. 마치 지금 우리 현실을 빗대는 말과 같다.

행정자치부장관을 쫓아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분당을 반대하는 논리나 찬성하는 논리 모두 그 이면에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 세력 결집이라는 목표가 도사린 것처럼 보인다. 대상 지역이 넓고 좁은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또한 무엇보다도 북한 핵 문제라는,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 현안이 눈앞에 놓여 있는데도 제1당은 주말 장외 집회를 통해 행자부장관을 해임하라고 대통령을 성토하겠다고 한다. 5, 6공 인사 퇴진을 주장하는 소장파 요구를 봉쇄하기 위한 술책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똑같다. 이민이나 강남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와 기타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모두 교육 문제에서 비롯한다. 이민을 가는 가장 큰 이유도 자녀 교육이다. 강남 부동산 가격 폭등 역시 교육 환경과 직결되어 있다. 젊은 부부가 출산을 기피하는 바람에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게 된 것도 자녀를 교육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서 학부모는 사교육비로 자신들의 노후생활 준비금마저 쏟아 붓는 실정이다. 그리고 교육의 빈부 격차는 가난 대물림이라는 최악의 사회 불안 현상을 낳게 생겼다. 현대 사회에서 가난 대물림은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 세습과 같다.

우리 나라의 교육 문제는 공교육 정상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교육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은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문제이다. 그 핵심에는 학벌 사회가 존재한다. 학벌로 다져진 기득권 구조에서,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일생 동안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불공정함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공교육을 바로 세운다고 해도 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즉 지방 소재 특정 대학에 수백억원 재정 지원을 한다고 해서 서울 소재 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들이 그 대학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대학 입시 제도를 바꾸어도 대학의 우수 학생 유치 경쟁만을 촉발할 뿐 변할 것은 없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미래지향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지도자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시끄럽게 전선을 확대하지 않고 때로는 물 밑에서 조용히 뜯어 고쳐 가는 지혜와 교활함도 필요하다. 반면에 가장 고질적인 핵심 문제는 엄정함과 초지일관으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 파괴해야 할 기득권의 한가운데에 학벌 사회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