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 ‘과거’도 개방하자
  • 탁석산(철학자) ()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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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도 시간이 지나면 여러 나라 문화의 하나가 될 것이고, 우수성이 증명된다면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 세례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덴쇼 슈분(天章周文)은 1423∼1424년에 한 넉 달 조선에 머무른 적이 있었던 일본의 선승 화가였다. 대장경 동판을 얻기 위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왔는데 문제가 발생했고, 슈분도 이에 연루되어 <세종실록>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그가 조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왔다. 교토의 소코구사 주지이면서 막부의 어용화가로 수묵화 발전에 한몫을 담당했던 이 화가를 소설로 쓰고 싶은 마음이 줄곧 있었다.

물론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작업은 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작업 착수를 미루게 하거나 못 하게 하는 더 큰 요인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다. 일본 문화가 필요한 경우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돋보이게 하는 때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일본 문화의 우수성이나 독자성을 강조하는 글은 사회 분위기로 인해 쓰기가 어렵거니와 나와도 별 호응이 없다.

''조선과의 관계’ 궁금한 일본 화가 덴쇼 슈분

슈분도 예외가 아니다. 안휘준은 <한국 회화사 연구>에서 ‘조선 초기의 화풍을 일본 무로마치 수묵 화단에 전파하는 데는 일본인 화가로서 한국을 다녀간 슈분과 한국인 화가로서 일본에 건너간 수문의 공헌이 매우 컸던 것으로 믿어진다’고 말했다. 조선의 화풍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처럼 말했는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차라리 안혜경이 <내가 만든 일본 미술 이야기>에서 슈분에 대해 ‘특히 남송의 산수화가였던 하 규의 영향을 받았다지만, 현재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산수도>와 <사계산수도병풍>에서는 그 화풍의 영향을 그리 많이 감지할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이 더 옳아 보인다. 어느 경우이든 한국에서 슈분은 독자적 영역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한국 상황이 그를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처가 있었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일본 문화 수입을 곧 전면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영화·게임·가요 등 모든 분야를 전면 개방한다는 것이다. 우려와 자신감의 교차에서부터, 여태껏 베껴왔는데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냉소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또한 개방을 역으로 이용해 일본에 우리 문화를 수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적극적 주장도 나왔다. 나는 문화 개방이 현재에만 얽매이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현재의 일본에 대한 문화 개방이 과거의 일본에 대한 문화 개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둑을 무너뜨림으로써 일본과 관련된 과거도 함께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 면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문화는 정치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라고 주장했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현재의 일본 문화를 통제하는 것이 곧 과거의 일본 문화를 통제하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보자면, 과거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현재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개방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상호 소통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총론에 불과하다. 누구나 총론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각론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의 어떤 화가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고 떳떳이 말하는 화가가 생겨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미국의 어느 유파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인데, 과연 일본도 이런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하리라 본다. 개방은 현재와 과거 모두에게 자유를 부여할 것이다. 자유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변할 것이다. 자신의 선호를 따라 의식은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도 시간이 지나면 여러 나라 문화의 하나가 될 것이고, 우수성이 증명된다면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 세례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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