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사이보그가 된다?
  • 김주환(연세대교수) ()
  • 승인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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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에 흐르는 미세한 전자기장을 이용해 물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데이터를 주고받고, 악수를 함으로써 서로의 신상 정보를 교환하는
‘개인 네트워크’ 시대가 오고 있다.”


고속 무선 인터넷과 휴대용 컴퓨터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의 방식을 새롭게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는 이제 네트워크에 연결된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이 세상을 경험하고 여러 가지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시대에 돌입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경험하는 일에 관한 정보는 웨어러블 컴퓨터 등을 통해 자동으로 기억 장치에 저장될 것이며, 그렇게 저장된 정보는 여러 가지 검색 기능을 통해 재생되거나 조작될 수 있을 것이다.

웨어러블 컴퓨터의 선구자라 할 스티브 만은 자기 머리에 씌워진 마이크로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어로 세상을 본다. 그가 보는 세상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카메라를 뒤로 돌리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뒤를 볼 수 있고, 왼쪽 눈으로는 앞을, 오른쪽 눈으로는 뒤를 동시에 볼 수도 있다. 또 어둠 속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를 작동해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재생 장치를 사용하면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고, 기억해둘 만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하드 디스크에 그 장면을 저장해둘 수도 있다. 이제 곧 무선 네트워크 시스템이 보편화하면 스티브 만은 대용량 서버 컴퓨터에 자기가 보고 들은 내용을 실시간으로 저장하거나 검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세상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임이 분명하다.
스티브 만이 개발한 웨어러블 컴퓨터는 그가 보고 있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집에 있는 컴퓨터에 전송한다. 그의 부인은 집에서 그가 보는 장면을 똑같이 볼 수 있으며, 슈퍼마켓에 가서 우유 하나를 사오라는 명령어를 자판을 통해 입력할 수 있다. 물론 그 명령 내용은 스티브 만의 눈앞에 문자 메시지로 뜬다. 이처럼 개인간 매체의 확산은 여기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과 유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몸에 부착하는 디지털 매체인 웨어러블 컴퓨터는 이미 우리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PDA·휴대용 게임기 등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매체를 지니고 다닌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기기들이 서로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 몸의 전자기장을 이용하면 케이블 없이 개인의 몸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여러 가지 휴대용 디지털 매체들이 서로 직접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는 광역 네트워크(WAN)에서 지역 네트워크(LAN)로, 나아가 한 사람의 몸을 바탕으로 하는 개인 네트워크(Personal Area Network; PAN)로 발전해 가고 있다. 사람 몸에 흐르는 미세한 전자기장을 이용하면 손으로 물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고, 악수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신상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1MHZ 미만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소모량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다른 PAN과의 혼선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짐머만은 두 사람이 서로 악수하는 것만으로 신상 정보가 담긴 전자 명함을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발신 장치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수신 장치 위에 서 있는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면 두 사람의 손을 통해 발신자의 신상 정보가 수신자의 개인 컴퓨터에 자동으로 저장되는 장치다.

PAN의 기반이 되는 것은 전지가 필요 없는 컴퓨터이다. 신발 밑창에 발전 장치를 달고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전기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구두 컴퓨터는 이미 개발되었다. 물론 걷는 동작에 수반되는 다리의 움직임 이외에도 숨쉴 때의 움직임이나 혈압, 체온, 손과 손가락의 움직임 등을 이용해서도 휴대 컴퓨터에 동력을 공급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시킴으로서 얻어지는 에너지가 컴퓨터의 동력원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미디어는 곧 우리 몸의 확장이라는 맥루한의 명제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증명되는 셈이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자기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웨어러블 컴퓨터에 동력을 공급하는 인간, 우리는 어느 새 사이보그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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