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끝없는 부패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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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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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인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권력을 누리고 축재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는, 이른바 ‘권력 지향 증후군’이다.”
가을에 사람들은 여행을 생각하고, 추억을 떠올린다. 흩어지는 낙엽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자신이 작다고 깨닫기도 한다. 이것이 행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해 가을은 이 모든 것들이 사치스러워 보인다.

어려운 경제 상황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과 자살, 이라크 파병,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SK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수사, 그리고 위도 핵폐기물 처리장과 북한 핵 문제는 여전히 미궁이다. 큼직큼직한 사건들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 한가운데에서 표류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제외하면 우리가 모두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나 정치적 후진성은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초하고 확대하고 있다.

SK 비자금 수사는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에서 출발해 현재는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지도부로 수사 대상이 확대되었다. 수사 전까지 철저한 비자금 수사를 촉구하던 한나라당은 곤혹스런 처지가 되었다.

이 와중에서 ‘고해성사’를 한 다음에 관련 정치인 모두를 사면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SK 비자금이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정치인이 불법 정치 자금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과거를 털고 새출발 하자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죄를 용서받은 정치인들이 돈에 대해서 떳떳한 새 사람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의식과 제도와 현실이 그대로인데 기적이 일어날 리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벌써부터 한나라당은 수사가 형평성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성하는 대신 야당 탄압이라고 몰고 가고 싶은 것이다. 말로는 쉽지만 사실 정치 자금 수사는 그 뿌리의 끝을 알 수 없을 것이므로 어느 수사에 대해서도 형평성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 정치가 부패한 데에는 구조적 문제점도 있다. 그러나 정치에 입문한 동기나 목적이 국민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정치를 통해 권력을 누리고 축재를 하겠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말로는 국민에 대한 봉사를 외치지만, 지역에서 재산가이거나 이름이 좀 알려지면 한번쯤 정치를 생각해 보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좀 잘 나간다 싶으면 많은 경우에 정치 입문을 권유받거나 스스로 출마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처럼 되었다. 우리 사회가 앓는 권력 지향 증후군인지도 모른다.
정치가 내내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모든 정치 과정이 여기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상황에서, 국내외적인 문제를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통해 새롭게 출발선상에 서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정치 제도가 바뀌고, 이에 따라 정치인의 역할 인식과 정치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제로섬 게임과 같은 대결적인 정쟁이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73세 이상은 중의원 의원 출마를 제한하자고 주장했다. 일종의 정치인 정년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나카소네 전 총리의 집무실을 방문해 국제적인 활동에 전념하고 국내 정치에서는 은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85세인 나카소네는 폭탄 테러라면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곧바로 84세인 미야자와 전 총리를 만났다. 미야자와는 총리의 위신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며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정치 개혁은 정치 지도자가 앞장서도 이루기 힘든 과제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는 가끔 소장파가 ‘반란’을 일으켰을 뿐 정치 지도자가 정치 개혁을 주도한 일은 없었다. 그 이유는 현실의 정치 지도자가 정치 개혁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나, 개혁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심중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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