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연대기 혹은, 최초의 세계사
  • 안철흥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1.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남쪽을 향해 자동차로 한나절쯤 달리면 카라코름에 도달한다.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 제국의 옛 수도다. 그러나 현재 거기에 유물이라고는 거북 비석 받침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하긴 칭기즈 칸의 무덤조차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정착에 익숙하지 않은 유목민들에게 역사란 먼지와 함께 사라지는 기억일 뿐일까. 몽골을 다녀온 이들은 그래서 더욱 그곳이 신기루의 땅처럼 여겨진다. 그런 몽골인들이 불과 8백년 전 세계를 정복했고, 그 역사를 정교한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놀랍다. 라시드 앗 딘이 14세기 초에 쓴 <집사(集史)>가 그 책이다.

<집사>는 크게 몽골 제국의 성립기와 칭기즈 칸의 업적을 다룬 부분(1부)과, 세계 각 민족의 역사를 다룬 부분(2부), 세계 각 지역의 경역·도로·하천을 기록한 부분(3부)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칭기스 칸 기>(사계절출판사)는 2001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부족지>와 함께 <집사>의 1부를 구성하고 있다. <부족지>가 몽골 제국 건설 과정에 참여한 부족들과 수령들의 계보를 밝힌 일종의 ‘인명록’ 성격에 해당한다면, <칭기스 칸 기>는 말 그대로 칭기즈 칸의 일대기를 축으로 일목요연하게 서술된 몽골 제국사이다.

<집사>는 당시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하던 일 칸 국의 군주 가잔 칸의 지시에 의해, 몽골 제국의 공인 사서로 쓰였다. 12~14세기에 몽골은 동쪽으로 한반도에서 서쪽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각 지역으로 흩어져 있던 몽골 귀족들은 조상의 이름이나 업적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을 뿐 아니라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가잔 칸이 라시드 앗 딘에게 사서 집필을 지시한 첫째 이유는, 이런 동족들의 분란을 막고 단합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집사>의 가치는 단순히 몽골 제국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했다는 데서 다하지 않는다. <집사>에는 중국·인도·아랍·유럽 등 당시 주변 민족의 역사가 집대성되어 있다. 가령 칭기즈 칸이 태어날 무렵 이집트에서는 이스마일파의 칼리프였던 자피르가 살해되었고, 바그다드에서는 홍수 피해를 당한 묘지의 시신들이 물에 떠다녔다. 또한 테무진이 ‘타양 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9개의 하얀 발을 가진 깃발을 세우고, 칭기즈 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무렵 유럽에서는 ‘프랑크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이집트와 시리아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동서를 종횡하며 쓰인 역사책은 그때까지 없었다. 로마 역사가들은 기껏해야 지중해를 넘지 못했고, 중국의 전통 깊은 사서들도 아라비아까지만 조망했던 데 비하면 이 책이야말로 진정 최초의 세계사라 할 만하다.

<집사>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데는 저자인 라시드 앗 딘의 공이 크다. 그는 페르시아인이었고, 역사학뿐 아니라 의학·식물학 등에 박학했다. 그는 일 칸 국에 출사해 재상까지 지냈으나, 집사를 완성한 얼마 뒤 군주를 시해했다는 음모에 연루되어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가잔 칸의 지시로 집필을 시작했지만, 라시드 앗 딘의 붓은 몽골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향했다. 몽골의 왕실 비기(秘記)인 <금책> 뿐 아니라 페르시아의 역사가 주베이니가 쓴 <세계정복자사>나 각 민족의 문헌 자료들이 저술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몽골족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아벳의 후손들인 투르크족에 속한 종족으로 설정한 뒤, 몽골의 독자적인 조상 설화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세계사 속에 편입했다.
<집사>는 난해한 페르시아어로 쓰였기 때문에 전설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번역본이 많지 않다. 1858년 러시아에서 처음 번역되었고, 두 번째 번역본이 미국에서 몇 년 전에야 나왔을 정도다. 몽골사 연구에 오랜 전통을 쌓은 일본에서조차 아직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다. 그런 차에 국내에서 <집사>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전적으로 김호동 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가 발벗고 나섰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앙아시아사 전공자로서 페르시아어·몽골어·터키어·위구르어 등 10여 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그가 저본으로 삼은 책은 이스탄불 톱카프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본(1317년)이다. 김교수는 하버드 대학 유학 시절 이란어 교본 삼아 <집사>를 처음 접한 뒤 번역을 결심했다고 하니, 20여년 만에 그 결실을 본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