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에 흐르는 헛된 돈냄새
  • 언론인 ()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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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카지노에서 목도되고 있는 것은, 진실로 현지 주민은 누구이고, 진정코 현지 주민이 무엇을 얻고 잃을지 헤아리지 않아 생긴 땅과 인간의 무참한 황폐화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온다.’ 아름다운 <정선 아리랑>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반도 땅에 남겨져 전하는 몇 안 되는 <아리랑> 중에 가장 고졸하고 구성진 소리가 <정선 아리랑>이 아닌가 한다. 들으면 때로 창자가 움직거리는 듯하다.
그 정선군의 고한이라는 곳에 카지노가 개장해서 사람이 구름같이 몰렸다고 들었다. 4천명 가까이가 밤이 새도록 들락거리며 노름을 ‘즐기고’, 천명이 넘는 사람은 대기표라는 것을 받고 기다렸다고 한다. 한 번에 천몇백만원을 손에 쥐는 잭팟이란 대박도 네 번이나 터졌다고 그 도박장쪽 사람이 발표했다. 석탄가루 날리던 깊디 깊은 산골짜기가 일순간에 돈냄새로 뒤덮이고 있는 듯하다.


개장하자 5천여 명 몰려 밤새 흥청망청

정선군의 고한과 사북에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라는 현대적인 도박장이 들어서게 된 배경은, 석유와 천연 가스에 밀려 무연탄의 소비가 격감해 폐광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산에 밥줄을 대고 있던 사람들을 살리자면 그 길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그러기에 사무치게 국민을 걱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폐광 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까지 만들어 한많은 광산촌을 새끼 라스베이거스로 환골탈태하도록 협조하지 않았을까. 요컨대, 폐광의 주인이 정부와 국회의 지지를 얻어, 폐광으로 침체에 빠진 그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그 지역 사람들의 고용 창출 효과를 높일 것으로 짐작되는 선진적 서비스 업종으로 업종 전환을 꾀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좀 거칠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이 일의 속내는 사실 간단해 보인다. 그 도박장 강원랜드의 주인이라 할 만한 강원산업이 삼표연탄으로는 더는 돈벌이가 안 되어 노름판을 벌이고 구전을 따내는 쪽으로 업종 전환을 꾀함으로써 폐광이라는 죽은 나무에 바야흐로 꽃을 피우려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런 경우에 이렇게 말하면 이른바 균형 감각이라는 것이 없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우므로 기왕이면 양시론적으로 이렇게 덧붙여 보자. 이를테면 밤을 새우는 노름판을 벌이려면 먹이고 재우는 시설도 있어야 하고, 따라서 청소부도 필요하고, 설거지에 빨래를 할 사람도 써야 하니 그런 정도의 인력은 아마 현지에서 얻었을 것이다. 고용 창출, 맞다. 게다가 놀음판에 꾀는 손님들이 노름판 밖에서 떨구는 잔돈을 바라 구멍가게 같은 자잘한 ‘창업’이 앞으로도 줄을 이어 마침내 서로 박이 터지게 싸울 것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 맞다.

듣건대는 강원산업뿐만 아니라 영풍산업을 위시하여 대성연탄의 ‘몸체’, 동원연탄의 ‘몸체’ 같은 기업들이 못 다 파먹고 버리는 자기들의 광산에 카지노말고도 스키장을 포함하는, 그 이름도 아리따운 국민 휴양지·국민 관광 단지 등속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한다. 폐광에다 할 수 있는 경제성 있는 사업이 이런 것들밖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건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거대 자본이 또아리를 틀고, 놀고 먹는 위락 단지를 가동하고 있는 산골짜기와 바닷가의 현실을 보면 카지노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는 폐광의 경제적 활기라는 것의 실체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목도되고 있는 것은, 진실로 현지 주민은 누구이고, 진정코 현지 주민이 무엇을 얻고 잃을지 헤아리지 않아 생긴 땅과 인간의 무참한 황폐화일 뿐이다. 아닌 것을 제외하라는 제안도 대안의 범주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소극적인 대안에 들 수 있다면, 폐광의 문제는 이런 아닌 것들을 제외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어야 옳다. 그러나 이미 늦었으니 일의 추이를 지켜볼 뿐이라 안타깝다.

정선의 아름답던 아우라지 나루는 어찌 되었고, 백살이나 먹었을 전통 물레방아는 아직도 살아 남았는지 궁금하다. 또 정암사 골짜기의 열목어는 여태도 씨가 마르지 않았을까? 사북에마저 카지노가 들어서면 ‘백번이나 굽이치며 흐르는 냇물’들의 땅 정선은 헛된 욕망이 밀려들고 밀려가는 파시(波市)가 되고 말 것이다. ‘<글자>0xD8EC_0xA79A.eps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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