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힘은 남근의 힘인가
  • 고갑희 (한신대 교수·영문학) ()
  • 승인 199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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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는 사회 곳곳의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 기존 판단이 근거하는 잣대가 틀렸음을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안티 미스 코리아 대회’ 등은 남성 중심 문화에‘안티’를 거
여성주의는 기존 문화에 어떤 충격을 줄 수 있는가? 여성주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 문화 비평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내용과 형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최근 언론을 둘러싼 논쟁을 보자.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언론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다. 언론 재벌의 신문과 자본 재벌의 신문에 대해 노동운동가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자본 재벌과 싸우는 노동운동가들에게는 언론 재벌과 자본 재벌의 신문이 크게 다를까? 지하철 노조에 대한 행정자치부의 경고문을 광고로 싣는 국민주주 신문과 이른바 보수 언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성주의자 처지에서 볼 때 여성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여성 신문>을 제외하고 다른 언론 매체들은 크게 다른가? 남성이 주인공이 되며 그 주인공을 받쳐 주는 여성의 노동과 노력은 소홀히하는, 정치·경제·사회 면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남성들 사이의 논쟁으로 보인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아빠의 도전>

월드컵을 입에 올리면서 흥미로워하는 사람들과, 변두리 3류 극장 동시 상영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들과 미인대회 입상 경력을 특별 전형 자격 조건으로 제시한 한 대학의 교육자들과는 얼마만큼 거리가 있을까? 스포츠와 여성 연예인 상품화가 스포츠 신문을 장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장 대항 친선 경기나 대학 축제 기간의 운동은 주로 남자들의 스포츠를 중심으로 행해진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과격한 운동이 남자들의 몸을 단련시킨다면, 언론을 상대로 논쟁을 시작한 문화적인 공격도 남자들을 단련시킬 것이다.

<아빠의 도전> 같은 방송 프로그램도 남성인 아빠를 단련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에 등장하는 아빠들은 가정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온갖 노력을 다해 성공해야 한다. 한 남자에 불과한 그에게 가족은 방송사가 내놓은 무리한 요구를 관철하기를 바란다. 아빠인 남성의 실패가 가족 모두의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남자가 경제적인 짐을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주역이면서 희생자인 아빠는 스포츠를 즐기고 비아그라에 흥미를 느끼는 남자이기도 하다. 가장으로, 남편으로 성공적이기 위해서 그의 몸과 마음은 단련되어야 한다. 가족의 대표니까. 가족이 하나의 단위임은 길거리의 교통 현수막에서도 볼 수 있다. ‘과속은 가정 파괴’라는 현수막은 자동차의 과속이 개인의 생명 파괴이기 전에 가정 파괴가 됨을 의미한다. 왜 그럴까?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가정임을 명백히 하는 예가 된다. 독신 여자와 남자들의 목숨은 목숨이 아니라는 말인가?

아빠의 도전과 스포츠와 비아그라는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남근이 강한 남자에 대한 사회적인 상징화는 지난 3월 강릉시와 삼척시가 조성한 ‘아들 바위’와 ‘남근 공원’에서 희화적으로 드러난다. 지역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의 전설을 이용해 관광 수입을 겨냥했다는 이 사업들은 남성 중심 사회의 면모를 단적으로 노출한다. <강원도의 힘은 페니스의 힘인가>라는 성명서를 내게 한 이 사건은, 여성 단체들의 강한 항의로 ‘아들 바위’를 ‘소원 바위’로 바꾸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애초에 엄청난 시 예산을 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음란함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성기 노출이 음란하다면 ‘아들 바위’ ‘남근석’ 재창조는 음란한 것이 아닌가? 음란성 비디오물에 대한 검열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그 자체가 음란한 것일까? 여성주의 관점에서는 남성 중심 사회 전체가 음란하다. 가정은 가정대로 유지하면서 성 매매의 현장을 기웃거리는 일이 음란하다. 1930년대에 <기생 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라는 글을 쓴 화중선이라는 기생은, 현모양처를 배출하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가리켜 ‘살인자’라는 과격한 발언을 한다. 혼인과 가정이란 여성을 노예처럼 묶는 현장이기도 한데 거기에 들어가 잘 견디라고 교육하는 사람이 진정한 교육자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주의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상대로 싸움을 걸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회 곳곳의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권력에 저항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기존 판단이 근거하는 잣대가 틀렸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안티 미스 코리아 대회’나 ‘여성 영화제’ 등은 기존 남성 중심의 문화에 ‘안티’를 거는 비판적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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