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 말 솜씨 ‘남편 뺨치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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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통과 직후 논리 정연한 즉석 연설로 노무현 대통령 대변
간담회장에 들어서던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참석자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뉴스를 계속 들으면서 오다 보니 손에 땀이 많이 났다. 죄송하지만 손을 좀 씻고 오겠다”라며 행사장을 떠난 것.

잠시 후 돌아온 권여사는 “부모님 산소가 근처에 있어 이 뒷길(마산 산복도로)은 자주 다니던 길이다. 오늘 좋은 방문이 되었을 텐데 오면서 뉴스를 듣다 보니 좀 긴장했다”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3월12일 오전 10시50분.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하기 위해 경호권을 발동하기 직전 상황이다. 노대통령과 함께 경남에 내려간 권여사는 대통령이 창원 공장을 방문하는 사이 따로 한 초등학교를 찾은 터였다(사진).

준비된 원고 덮고 “제 심정을 전하겠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이 더 흐른 낮 12시10분. 경남 지역 여성단체장들과의 오찬 행사에 참석한 권여사의 표정은 더욱 굳어 있었다. 인사말 순서가 되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준비한 원고를 덮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지금 앉아서 좀 망설였다. 준비한 대로 인사말을 할지, 아니면 지금 심정을 표현하는 게 옳은 것인지 고민했다. 그런데 어렵게 온 길인 만큼 지금 제 심정을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미 국회에서 노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후였다. 애드 리브에 강한 노대통령과 달리 권여사는 평소 준비된 원고에 충실한 편이다.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한 행사에서 노대통령이 좀 말이 많아진다 싶으면 권여사는 지긋이 남편의 손을 잡아 신호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 날만은 권여사도 평소와 달랐다.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다.

“저희들 부덕의 소치인지 이런 사태가 벌어져 죄송하고 부끄럽다. 국민 불안이 걱정되고 외국에서 대통령과 정부, 국민을 무시할 것 같아 걱정이다. 참여정부 출범하면서 여러 가지 과오가 있었다. 정책적 잘못이 아닌 세련되지 못한 언행으로 대통령이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언행은 아니었다.

민심이 우리들을 선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 등에 민심이 반응한 것이지, 학벌이나 언행을 보고 동의한 게 아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민주당에서도 처음에는 천정배 의원 한명만 우리 편이었다. 그러나 민심은 대통령을 후보로 선택했다. 대통령 선거 사상 후보 단일화도 처음 이뤄냈다. 그러나 저쪽에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지 재검표를 했다.

대통령은 재신임 의견도 냈다. 사람들이 의아해 하며 경솔한 행동이라고 얘기했으나 차별화가 도덕성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성과도 보지 못하고 탄핵안이 가결되어 흥분되고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말이 두서 없이 나왔다. 민주주의가 좋은 것은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임기 5년 동안 정책을 마음껏 펼 수 있도록 받쳐줘야 성숙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임기 5년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권한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게 하나의 순리이고 질서다.”

즉석 연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가 정연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날개 꺾인 노대통령이 하지 못하는 말을 권여사가 마음먹고 대변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권여사의 이 날 발언은 몇몇 방송이 인용 보도했다. 노대통령 취임 이후 권여사 목소리가 텔레비전 뉴스를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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