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드라마’ 다시 보기
  • 이재현(문학 평론가) ()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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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탄핵과 관련한 결정을 최대한 늦출 것이다. 온갖 이론과 사례와 판례 들을 검토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 것이다. 인기와 마찬가지로 권력도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법이니까.”
나는 최근에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끝나버린 뒤에 심심함을 이기지 못했던 터라 텔레비전을 켜자마자 탄핵 가결이라는 정치 액션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었다. 몸싸움, 고함, 눈물, 박수, 환호, 애국가 제창…. 제법 볼 만했다. 난 평소에 드라마를 보면서 이야기 흐름보다는 연기에, 잘하는 연기보다는 못하는 연기에, 그리고 연기보다는 패션과 액세서리에 더 주목하는 버릇이 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경위들에게 둘러싸인 국회의장을 향해서 구두가 날아가는 장면과 송석찬 의원이 투표함을 내팽개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1980년 5월과 1987년 6월의 내 경험에 의하면, 신발이라는 것은 백골단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벗겨지는 경우가 어쩌다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 벗어 던진 적이 없고, 다른 이가 제 신발을 벗어 던져대는 것을 본 적도 없다. 당연히, 화염병이나 ‘짱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이 없다면 대체 뭘 신고 집에 돌아가며 다음날은 뭘 신고 나온다는 말인가. 이거는 대충 싸우고 말겠다는 것 아닌가.

이 장면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음, 저 구두는 자기 게 아니로군”이었다. 나중에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야, 의원들은 비서관이 의원회관에서 가져다주는 ‘쓰레빠’ 신고 차 있는 데까지만 가면 돼.” 역시, 드라마는 다음날 다른 사람과 미주알고주알 전날 본 것에 대해 떠드는 게 맛있다.

송석찬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을 탈당해서 후단협에 가입했다. 한마디로 ‘철새’ 정치인이다. 물론 이 경우 이 용어를 듣고 있는 철새는 정작 아주 기분 나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2004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명단에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데, 이미 그는 정계 은퇴 내지는 불출마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그의 연기는 오버와 언더가 적절하게 결합된 그럴듯한 것이었다. 철새 전력을 한꺼번에 뒤집으려는 데서 생겨난 ‘오버’ 연기와, 그러면서도 너무 과격하게 비치면 재기할 때 힘들 것이라는 순간적 자기 검열로 인한 약간의 ‘언더’ 연기 말이다.

이른바 국정 공백과 사회 혼란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서 제작한 이번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 천만 명을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국내에 한정된 것인 반면에, 이 정치 액션 드라마는 CNN을 통해 여러 번 되풀이해서 방영됨으로써 ‘한류’의 파워를 전세계에 알렸다.

“관료와 드라마는 질질 끄는 게 버릇”

한편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출근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찍느라 바쁜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거의가 만족스런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 웃음은 고 건 대행의 굳은 표정과 대조된다. 자신들의 권력을 만끽하는 상징적 의미를 나는 그 표정에서 읽는다. 헌재도 상당한 권력 기관이며, 그리고 자신들이 바로 그 기관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이제서야 세상에 드러났을 때의 뿌듯함을 얼굴에서 감추지 못한 것이다.

만약 내가 헌재 재판관이라면 테러 당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결정을 최대한 늦출 것이다. 인기와 마찬가지로 권력도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법이니까. 많은 국민이 헌법재판소에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온갖 이론과 사례와 판례 들을 검토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 것이다. 시간을 끄는 것이야말로 모든 관료주의적 제도와 절차의 본질이다. 행정 관료만이 관료인 것은 아니다. 선출직이냐 임명직이냐 하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헌법재판관도 기본적으로는 국가 체제의 관료이며, 그런 한에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드라마는 대개 이야기를 질질 끄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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