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을 ‘투어’한다고?
  • 이재현(문학 평론가) ()
  • 승인 2004.04.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보수 정치인들은 우리의 고달픈 생존이나 어려운 생활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표를 구걸하는 게 목적이어서 선거 유세라는 이름의 정치 ‘투어’를 할 따름이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민생 투어’다. 세상에나, 어찌 ‘민생’에다가 투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먹고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고단하고 팍팍한데, 감히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민다.

보수 정치인들의 발상이라는 건 늘 이런가 보다. 청년 10명 가운데 1명이 놀고 있고 취업 청년층 절반이 비정규직이라는 게 통계청 발표인데, 지난번에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탄핵 규탄 촛불집회에 모인 국민들 상당수를 실업자라고 몰아붙였다. 또 며칠 전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발언을 놓고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의 분노라는 게 논리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단지 당선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로서는 민생에 투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본디 아주 당연한 발상인 셈이다. 화 낼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보수 정치인들은 우리의 고달픈 생존이나 어려운 생활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표를 구걸하는 게 목적이어서 선거 유세라는 이름의 정치 ‘투어’를 할 따름이다.

일간지에서는 후보들의 사람됨을 잘 따져 본 뒤 투표하자고들 떠들고 있지만 나는 이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과연 보수 정치인들이 진정한 의미의 민생에 관심이 있는가를 세심하게 따져봐야 하며, 또 그들의 정당이 민생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가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노인 관련 복지 공약을 살펴보자. 열린우리당은 ‘공적 노인요양보장 제도’를 도입하고 장기 요양 시설 충족률을 2008년까지 6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공약 안에는 이것과 모순되는 것이 있다. 열린우리당은 ‘실버산업진흥법’을 제정할 것이라는데, 실버 산업이란 영리 목적으로 노인용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다. 즉 공공 차원에서 노인 복지를 추구하기보다는 사기업 중심의 노인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돈 없는 노인들은 갈 데가 없다. 반면, 한나라당은 ‘전국민 1인1연금, 국민기초연금제 도입’을 공약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재정 계획은 전혀 없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약은 사기극일 뿐이다.

앞뒤 안 맞는 여야의 ‘노인 복지 정책’

노인 복지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은 대기업의 세율을 현행 15%에서 13%로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한나라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 법인세 최저 세율을 12%에서 7%로 낮출 것이며 또 GDP 대비 2.8%(18조9천억원)인 2004년 국방 예산을 GDP 대비 4.0%(27조원)로 증액하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세금 전체를 줄이는 대신 국방 예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으니 결국 줄일 곳은 복지 예산밖에 없다. 경제 활동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빨리 죽으라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동영 의장의 말은 결코 실언이 아니다. 그동안 애써 개혁적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던 정의장이 이럴진대 나머지 대다수 보수 정치인의 본심이 어떠할까는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보수 정치인 모두에게 정의장의 말투를 그대로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곧 무대에서 퇴장할 거니까 너희들은 집에서 쉬면서 정치 안 해도 괜찮다. 너희들 보수 정치인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

나는 주민등록 주소가 시골로 되어 있다. 다음 주중에 나는 어머니도 뵙고 투표도 할 겸해서 시골에 가서 며칠 푹 쉬다 올 작정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굳이 고속철을 타려고 한다. 보수 정치인들 퇴출과 정치 판갈이를 고속으로 해내기 위해서다. 정치 ‘투어’를 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제맛이 나리라.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