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목 노린 애니메이션 전쟁
  • 宋 俊 기자 ()
  • 승인 199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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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폭스, <아나스타샤> 앞세워 디즈니에 선전포고… <천녀유혼> <곡스> 가세 ‘4파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바탕 애니메이션 전쟁이 벌어졌다. <아나스타샤> <인어공주> <천녀유혼> <곡스>. 네 편 모두 탄탄한 작품성과 기발한 상상력, 훈훈한 감동으로 무장한 터여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공방이 가장 치열한 라이벌은 <아나스타샤>와 <인어공주>다. 막대한 제작비와 최첨단 테크놀로지, 전방위 홍보 작전 등이 총동원되었다. 먼저 선전 포고를 한 쪽은 <아나스타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계를 지배하는 디즈니 왕국의 독재를 거부하며 공성의 기치를 치켜들었다.

<아나스타샤>를 선봉장으로 내세운 ‘20세기 폭스’사는 4년 전부터 공격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94년 1억6천만 달러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에 6만6천 평방피트 규모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세우고 일류 애니메이터 3백 여 명을 ‘징집’하는 한편 슈퍼 컴퓨터·고성능 스캐너 등을 갖춘 최첨단 제작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런 다음 디즈니 출신 베테랑 명콤비 돈 블러스(61)와 게리 골드만(54) 감독을 야전 사령관으로 스카우트했다.

디즈니, <인어공주> 디지털 버전으로 ‘맞불’

두 사령관의 지휘 아래 3년여 동안 6천만 달러를 들여 <아나스타샤>를 완성한 20세기 폭스는 일찌감치 홍보전에 돌입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부터 포스터로 융단 폭격을 퍼붓더니 올 여름에는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4천여 극장주와 기자를 스튜디오로 초청해 아이스쇼까지 열었다. 8월 말부터는 전세계 22개 지사에서 잇달아 극장·기업 측 담당자 4백여 명을 초청해 <아나스타샤> 캐릭터 설명회를 열어 왔다.

폭스의 풍악 전술에 디즈니는 맞불 작전으로 맞섰다. 올해의 작품 <헤라클레스>를 지난 여름에 이미 상영해버린 디즈니는 <아나스타샤>보다 1주일 빨리, 디지털 버전으로 재무장한 <인어공주>를 미국내 2천54개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아나스타샤>는 그 뒤를 이어 11월21일 2천4백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되었다. 결과는 흥행 2위를 기록한 <아나스타샤>의 승리. 그렇지만 디즈니로서도 밑질 것이 없었다. 2천여 극장을 선점함으로써 <아나스타샤> 선풍이 불 기회를 막았을 뿐더러, 영상을 디지털화했을 뿐인 8년 전의 영화로 흥행 5위를 차지해 실리도 쏠쏠했다.

맞불 작전은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디즈니는 <인어공주>를 <아나스타샤>보다 1주일 앞서 재개봉한다(12월13일). 결과가 미국과 같은 양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디즈니가 이처럼 발 빠르게 방어전을 펴는 까닭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업의 핵심은 영화 흥행보다 캐릭터 수입에 있다. <미녀와 야수>(92년) <알라딘>(93년) <라이온 킹>(94년)의 연속 안타에 힘입어 절정기를 구가하던 94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디즈니 캐릭터를 사용하는 전세계 업체 수는 3천개가 넘는다. 캐릭터 사용료는 상품 정가의 5% 수준으로, 94년 한 해에만 6억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여기에 다시 캐릭터 상품 매출액이 추가된다. 디즈니 왕국의 94년 총수익 19억6천6백만 달러 가운데 22%가 캐릭터 상품 판매 수입이었다. 둘을 합한 액수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이다. 이 황금알 캐릭터의 성공 여부가 애니메이션 흥행에 달려 있는 것이다. 20세기 폭스의 빌 메케닉 회장은 이 황금알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93년 11월 디즈니에서 폭스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한 속셈이 여기에 있다.

디즈니의 맞불 작전에는 또 하나의 의도가 깔려 있다. 자기가 이 방면의 ‘원조’임을 새삼 강조하는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충실히 따랐다. 사전 정보 없이 작품만 보고는 디즈니 것인지 폭스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그 점에서 <인어공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최근작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곱추> <헤라클레스>로 이어지는 디즈니 르네상스의 문을 연 작품이 <인어공주>다. 디즈니는 <아나스타샤> 개봉에 맞추어 <인어공주>를 내세움으로써 <인어공주> 이후 8년 동안 축적해온 작품의 품위와 신뢰가 <아나스타샤>에게 후광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고 <아나스타샤>가 결국 디즈니 영화의 서자임을 비틀어 알린 셈이다.

폭스의 주장은 또 다르다. 66년 월트 디즈니가 타계한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침체를 면치 못했는데, 86년 돈 블루스와 게리 골드만이 만든 <아메리칸 테일>이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디즈니 르네상스의 디딤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 대상의 플롯을 벗어나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지향한 점과, 음악을 대폭 끌어들여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 것도 블루스와 골드만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원조 논쟁’은 그 진위를 떠나, 디즈니와 폭스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종전의 애니메이션 문법을 강화하여 확대 재생산하겠다는 의지다. 종전 문법의 확대·강화, 이른바 ‘장르 영화’의 공식이다. 장르 영화란, 마치 자동차의 모델이 해마다 조금씩 변형되어 소개되듯이 ‘동일한 구성과 유형을 유지하면서 등장 인물과 스토리만 바꿔 반복 생산되는 영화群’으로 정의된다.

선·악 대립 해피 엔드, 할리우드 공식 ‘판박이’

<아나스타샤> 등장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보여온 장르화 조짐이 한 회사의 전략 차원을 벗어나 범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공식으로 팡파르를 울리며 정식 출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뮤지컬과 어드벤처 형식의 결합, 주인공과 악한의 이분법적 대립, 양측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조연 아이콘 활용, 극적 반전과 해피 엔드에 이르기까지 <아나스타샤>는 이전의 공식을 철저히 신봉한다. 장르 영화의 폐단은 오래 전부터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지적된 바 있다. 이용관 교수(중앙대·영화학)는 장르 영화가 △삶의 진실을 묘파하기보다 다른 영화나 여타 예술의 요소를 모방하는 경향이 강하며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다 보니 사회적 통념에 기대게 되고 △특정 계층의 가치관이나 도덕성을 강화하는 역기능을 수행한다고 정리했다. 창작이 시장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구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주 관객은 어른을 따라온 어린이다. 문화 평론가 김종엽씨(<리뷰> 편집위원)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고 성토한다. 행복에 대한 지나친 도취와 신데렐라 콤플렉스 확산, 보수적 가치관 세뇌, 미국 중심의 획일적 세계관 주입 등이 그 골자다.

행복에 대한 병적 도취는 삶과 사회와 진실을 읽는 눈을 흐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참된 자아 형성을 방해한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개가 구질서가 요구하는 보수적 가치관에 순응할 뿐 삶의 명암을 직시하고 그 내면을 성찰하려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보이지 않는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아나스타샤> 등은 신데렐라의 속성을 변용한다. 결혼·마술·기적 따위 행운에 의한 급격한 신분 상승이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핵심이다. <인어공주>는 인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인간의 세계에 편입되려 목숨을 걸고, <포카혼타스>는 훗날 자신의 종족이 멸족되는 줄도 모르고 백인 선원을 연모한다.

“동화가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기 쉽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러나 디즈니가 <키다리 아저씨>나 <행복한 왕자> 같은 동화는 왜 다루지 않는가. 고집스레 자기 정원을 지키던 키다리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울타리를 열어주는 훈훈함, 제비와 함께 자기 몸에 장식된 보석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천국에 가는 왕자의 감동이 디즈니에는 없다. 이는 미국식 이데올로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종엽씨의 지적이다.

<아나스타샤>는 매카시즘의 홍역을 앓고 난 미국의 편집증을 그대로 보여준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가 러시아 혁명의 회오리에 휘말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재회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중심 줄거리이다. 문제는 러시아 혁명이 악마의 신령을 빌린 사제 라스푸틴의 개인적 원한에서 말미암은 저주의 결과라는 설정이나, 아나스타샤의 생존 소식을 듣고 러시아 인민이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히 춤을 춘다는 발상이다. <아나스타샤>는 사회주의 러시아를 풍자하는 데 골몰해, 제정 러시아의 부패를 망각하고 왕족의 사치를 행복으로 표현하는 우를 범했다.

이에 대해 <여간내기의 영화 교실> 저자 김동훈씨(문학 평론가)는 “장르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고, 삶의 갈등을 왜곡하거나 마취해 소시민적 태도를 조장하는 위안부 구실을 한다. 장르화는 창작의 왜곡을 부르는 미끼다”라고 단언한다.

러시아 공주와 인어 공주가 떠들썩하게 싸우는 한편에서, 조용히 개봉 채비를 마친 <천녀유혼>은 창작의 신성함을 묵묵히 보여준다.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주조로 애잔하고 화사한 영상을 보여주는 <천녀유혼>은 홍콩 영화 감독 서극의 동명 영화를 서극 자신이 리메이크한 애니메이션이다.

귀신과 인간의 사랑, 주요 등장 인물만 같을 뿐 전혀 새로운 창작품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발상과 스토리가 신선하고 풍부하다. 사람의 탈을 쓴 해골 부부, 부활 의지를 불태우는 귀신들로 가득찬 환생 열차, 근육질 스타 요괴 ‘흑산’과 그 팬들, 귀신들의 핸드폰, 귀신 잡는 도사 연적하의 기발한 비행선 등 상상을 초월한 영상이 숨 쉴 틈 없이 관객을 매료시킨다. 감동과 진지함도 담겨 있다. 인간이 귀신을 변호해야 하는 예외 상황, 일족에게 등을 돌려야 하는 귀신의 사랑과 고뇌, 도사들의 호승심과 승부욕이 부른 악폐 따위가 복합적이면서도 명쾌하게 줄거리를 이끈다.

<천녀유혼> <곡스>, 정성 돋보이는 ‘참한’ 작품

이미 84년부터 아내와 함께 ‘전영공작실’을 운영해 온 서극 감독은 86년 특수 효과 전문 ‘신시각 특기공작실’을 추가 설립해 홍콩 SFX 영화를 주도해 왔다. <천녀유혼>은 신시각특기공작실의 회심의 역작이다. 4년여에 걸쳐 <천녀유혼>을 제작하는 동안 신시각특기공작실은 천만 달러를 들여 첨단 장비를 장만하기도 했다. 조건 없는 창작 정신과 확신이 낳은 <천녀유혼>은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97 애니멕스포>에 개막작으로 초청 상영된 바 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곡스>는 원시 시대로 되돌아가서 인간의 본 모습을 성찰한다. ‘불 발견’ ‘지진’ ‘덫’ ‘낚시’ ‘발명’ 등 모두 13개의 단락으로 묶인 <곡스>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촌극과 고난을 코믹하게 그렸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주의와 유희 근성, 가족애, 창의력과 모험심 들이 긴밀하게 맞물려 드러난다. 두더지 서핑, 인간 봅슬레이, 고인돌 그네 같은 발상도 돋보인다.

이 작품은 제작비를 홍보하지 않는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철저하게 인내로 만드는 작품이다. 1초에 24프레임, 진흙 인형들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찍은 영상을 24컷씩 연결해야 1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얻는다. 하루 종일 촬영한 분량이 1~2초에 그칠 때도 있다. 이 더딘 공법으로 <곡스>는 일가족 6명과 공룡 시조새 곰 고릴라 두더지 토끼 개구리 코브라 따위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71분짜리 작품을 완성했다.

감독 데이니얼 모리스와 마이클 모트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 광고를 만든 이들이다. 아이디어와 인내심만으로 태어난 작품 <곡스>는 이미 세계 30개국에서 개봉되어 인기를 얻었고, 94~95년 국제 유수 영화제에서 십수 차례 상을 받았다.

12월 중순이면 며칠 간격을 두고 일제히 개봉될 이 애니메이션들의 인기 다툼은 예측 불허이다. 누가 이길 것인가.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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