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 조선 사람은 정말 남루했을까?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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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물관 <그들의 시선으로 본 근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같은 구한말 외국인들의 한국 견문록을 읽으면 착잡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조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그녀조차도 한국 여행 초기에는 19세기 말 조선의 현재를 매우 부정적으로 그렸고, 그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일제 시대의 우리네 풍물과 인정을 담은 사진들을 볼 때 역시 착잡하다. 그것들이 과거의 우리를 증언하는 희귀 자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부분 일본인에 의해 촬영되어 ‘그들의 시선으로 본 우리’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다’는 곧 ‘왜곡하다’가 되어버린다. 사진을 보면 대개, 풍경은 스산하고 건물은 퇴락했으며 사람들은 남루하다.

<그들의 시선으로 본 근대>(서울대박물관 엮음, 눈빛 펴냄)는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활약했던 일본인 연구자들이 1910~1930년대에 조선과 만주 일대를 돌며 촬영한 유리건판 일부를 인화해 사진집으로 엮은 책이다. 조선총독부가 식민 통치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본격화한 민속 조사의 시각적 결과물을 모은 것이다. 따라서 사진들은, 겉은 다큐멘터리 같아도 속에는 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국 민속학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의 <조선의 풍수> <조선의 귀신> <조선의 점복과 예언> 등이 황민화 정책과 신사 참배 시행을 위한 자료집이었던 것처럼, 이 책에 실린 사진들 역시 조선총독부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시선으로 본 (조선의) 근대’에는 근대가 없다. 이른바 ‘모던 뽀이’는 한 사람도 없고 도포짜리들만 활개치는 격이다. 당시는 옛것과 새것이 혼재하고 교체하며, 도시화 또한 빠른 속도로 진전되던 때였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 대부분은 농촌의 일상이나 무속, 옛 관습 등 조선의 전근대를 담은 것들이다. 변화하는 조선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보다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통해) 변해야 마땅한 조선의 모습에만 집중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써, ‘근대가 사상(捨象)된 조선의 근대’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게 만들었다.
‘근대 없는 조선의 근대’ 담은 사진들

초가 지붕 너머로 기와 여러 채가 도열해 있는데도 다 쓰러져 가는 초가만 커다랗게 클로즈업하고, 도시민들보다는 어딘지 허름한 시골 사람들이 피사체로 더 자주 등장한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일본인과 한국인 가족 사진(아래 사진 참조)을 보라. 한쪽은 깨끗하게 잘 차려 입은 인물들이 멋진 정원에 ‘유복하게’ 모여 있고, 또 한쪽은 맨바닥에 돗자리 하나 깔아 놓고 ‘궁상맞게’ 앉아들 있는 모습이다.

무속을 담은 사진들에는 일본인 조사자나 조력자(경찰 군인 등)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등장해 그것이 연출되고 동원된 장면임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강원도 고성에서 굿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위 사진 참조)을 보면 뒤쪽에 일본인 학자들과 경찰이 지켜서 있는 것이 나오는데, 굿 특유의 신명이나 현장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신성시되어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무복과 무구를 착용한 일본인 조사자의 ‘독사진’도 나온다.

한 사회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노동과 휴식을 담은 사진이 드물다는 것도 일본인 조사자들의 관심사가 당시 생활상의 생생한 재현과 기록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간간이 보이는 모습조차도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한 것들보다는 농촌 중심의 전근대적 노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휴식과 유흥은 무속에 종속된 상태로만 등장한다. 결국, 그들이 촬영한 조선은 옛날부터 가난하고 미개했으며, 지금도 근대화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 왔고, 발전된 일본에 의해 하루빨리 문명화해야 했다. 사진이 그 자체로 식민 지배의 도구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사진들이 전혀 자료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을 알리는 희귀 자료인 것이 분명한 만큼, ‘그들의 시선’을 ‘객관적 시선’으로 오해하여 ‘우리들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면, 자료적 가치가 더욱 배가될 것이다. 엮은이의 해설을 따라 가며 사진 속에 잠복한 ‘권력 의지’를 읽어내는 재미도 괜찮다. 사족- 유리건판이란 유리판 위에 감광유제를 칠해 만든 것으로 초창기 사진에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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