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로 무대 휩쓰는 ‘희’ 듀엣
  • 백지숙 (문화 평론가) ()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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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서 박정희와 이승희가 ‘살아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연계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을 둘러싼 담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주말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의 한 코너 이름을 빌리자면 ‘떴다 두 남녀’이다. 이름이 같이 ‘희’자로 끝나는 이들 ‘희’듀엣은 요즘 한창 시장 구석이나 놀이 광장, 학교 등을 가리지 않고 파고들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청렴이냐 부패냐, 경제 성장이냐 민주화냐, 예술이냐 외설이냐, 수출이냐 수입이냐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 중에서 답을 선택하기를 요구한다.

이미 가고 없는 박정희와 올해 27세인 이승희는 각종 언론과 대중 매체에서 ‘살아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여러 모로 전혀 다른 이 두 인물을 엮는다는 것이 억지스러운 감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쩐지 둘 사이에 일정한 연계 지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두 인물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담론’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막 빠져나오기 시작했던 70년대에도 세계에 자랑스런 한국인을 알리고 금의 환향하는 인물들은 있었다. 74년 한 해에만도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하고, 홍수환이 남아공에서 당당히 WBA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해, 개발도상국의 그 ‘팍팍했던’국민들을 환호하게 했다. 77년에는 다시 홍수환이 파나마로 건너가 카라스키야와 대전해 ‘4전5기’신화를 창조하며 WBC 주니어페더급 왕좌에 올랐고, 79년에는 차범근이 세계 축구의 최고봉인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차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제가 산적해 있고 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그 시대의 한국에도 낭보는 이처럼 해외에서 날아들었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최고, 1등, 최초 등등의 수식어를 달고.

당시 세계에 이름을 빛낸 사람들은 이른바 문화·체육인들, 즉 확실하게 승부를 낼 수 있는 운동 선수나 연주자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크게 보아 이들이 모두 ‘몸으로’하는 직업인들이었다는 점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새마을운동과 해외 건설 현장에서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국민들이 땀 흘리고 있을 때, 장발과 미니 스커트 단속, 통행 금지와 고문으로 몸을 옥죄이고 있을 때, 그 ‘가난한’ 몸에 풍요한 ‘문화’적 의미들을 가져다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적인 수식어들은 유신이 있었던 바로 그 해에 유행했던 ‘스마일 배지’의 미소처럼 어쩐지 인공적인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누드 모델 이승희는 바로 그 시대의 ‘아버지’박정희에게서 그리 멀지 않다. 살기 힘들어 한국을 떠난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코리안 드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려운 가정 환경과 온갖 인종적 편견을 딛고 유명 의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이 됨으로써 그 꿈을 실현한 그는, 이제 한국에 돌아와 ‘포르노’와 ‘아트’는 다른 것이라는 문화적인 교시를 내린다. 때마침 이 ‘노랑나비’가 가볍게 날아든 한국은 한보와 황장엽과 김현철로 어수선하고 국민들은 온갖 울화증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문화적으로 진보, 정치적으로 보수인 경우 극히 드물어

이승희의 몸 역시 박정희가 만든 몸에서 그리 멀지 않다. 성형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밝히며 짐짓 새로운 몸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검소하게 살며, 몸매가 흐트러지더라도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그는,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으는 90년대의 사이버그 몸보다는 70년대 식의 전통적이며 윤리적인 몸에 더 가깝다. 반면에 같은 ‘희’자로 끝나지만, 한국 모더니즘의 이 청교도주의를 거부하고 섣불리 ‘쾌락’을 이야기했던 진도희는 ‘젖소 부인’이라는 칭호조차 박탈당하고 ‘젖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음습한 술좌석의 질펀한 농담으로만 살아 있을 뿐이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 주자들의 각종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90년대에 다시 유행한 스마일 배지 같은 그들의 정형화한 미소를 꿰뚫고 예의 주시해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그들의 문화적인 ‘입장’들이다. 그것은 포르노 전용관에 대한 의견처럼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갈라질 수도 있고, 그들의 예술 취미나 말하는 태도 등으로 우회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기억해둘 것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이지만 문화적으로 보수라는 말을 조금 바꾸어, 문화적으로는 진보이지만 정치적으로 보수인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라면 이름이 ‘희’로 끝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만’‘환’‘우’‘삼’으로 끝나는 사람도 절대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나쁜 우리지만, 아직도 우리 몸 속속들이 남아서 우리를 여전히 ‘가난하게’만드는 그 과거의 문화사를 결코 용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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