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의 자살을 꾸짖어라
  • 이재현(문학 평론가) ()
  • 승인 2004.05.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은 비리 연루자의 자살을 온정적으로 다루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리고 검찰은 혐의를 받던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수사를 중단해서는 안된다. 비리에 대한 경제적 책임은 유산 상속자에게 물어야 한다.”
비리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받던 박태영 전남도지사가 한강에 투신했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살 사건으로 올 들어서만 네 번째이며, 지난해 4월의 예산 ㅂ초등학교 교장까지 합치면 두 달에 한 번꼴이라고 한다.

거칠게 말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내 생각에 한국 사회는 유달리 죽음에 약하다. 박지사의 죽음이 ‘전남도장’으로 치러지고 전남도청에 조기가 게양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리란 법정에서 판결로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고 안상영 부산시장의 관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업무를 보다가 순직한 것이 아니라 비리 혐의에 연루되어 자살한 것인데 왜 조기이며 도장인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게 되는 것이다.

일간 신문에서는 여러 가지로 이런 자살 현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고 있다. 대개 정신과 의사들의 설명이 덧붙여지는데, 전문가라는 정신과 의사들도 정작 자살해 본 경험은 없을 터이므로 타인의 죽음에 대해 그저 주를 달아놓는 것에 불과하다. 나로서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비리에 연루된 자살 사건에 관한 한 언론은 이를 온정적으로 다루어서는 결코 안된다. 평소에 자살 사이트를 비난하는 것과 똑같은, 아니 자살한 이가 사회 지도층이라면, 그보다 더 강한 어조와 톤으로 비난해야 한다. 자기 실력에 의해서든, 아니면 연줄이나 운에 의해서든 사회 고위층에 속하게 된 사람은 어쨌거나 더 많은 특권과 혜택을 누린다. 그렇다면 그만큼 사회적이고 윤리적 책임을 더 져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 전체가 분명히 합의하고 있다.

어떤 일간지의 사설은 검찰 조사 과정을 면밀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언론이 늘 이런 식으로 나오니 검찰이 이인제 의원에 대한 강제 구인을 보류하게 되는 것이다. 특권층이 검찰 조사에서 압박감이나 모멸감을 훨씬 더 느낄 것이라는 추정은 웃기는 얘기다. 비특권층인 대다수 서민이야말로 특권층보다 훨씬 더 큰 모멸과 수모를 검찰에서 실질적으로 겪게 되는 법이다. 특권층일수록 더 인권을 보장받을 뿐더러 결국 검찰도 일종의 특권층이므로 자기네끼리는 더 봐주리라는 것이 서민들의 판단이다.

언론, 죽음에 대한 이념적·계급적 차별 심해

앞으로 비리에 연루된 특권층의 자살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은 이를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책임 회피로서의 자살은 언론에 의해 결코 온정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살아서 치욕을 견디는 것이 불명예스럽게 자살하는 것보다 어떠한 점에서든 확실히 더 나은 선택이 되도록 사회 분위기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 범죄와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법적·윤리적 처벌을 감내하도록 해야 한다. 특권층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애가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도 내주어야 하는 데다가 부어 가고 있는 적금과 보험이 있는 나로서는 어떤 상황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자살을 선택할 수 없다. 박지사가 자살하던 날 청계천 영세 상인 한 명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몇몇 신문은 이를 보도하지도 않았다. 죽음에 대한 이념적이고도 계급적인 차별이 언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특권층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지금보다 더 강도 높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혐의를 받고 있던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수사를 중단해서는 안된다. 비리에 관해서는 그 경제적 책임을 끝까지 밝혀내 이를 유산 상속자에게 분명히 물을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특권층의 자살을 막는 ‘실용주의’적인 방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