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족벌 지배 벗어나라
  • 편집국 ()
  • 승인 199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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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만, 지금 언론은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 주어야 하리만큼 위기다.”
 
한국에서 신문은 아편이나 마약과 같다. 왜냐하면 한번 맛을 들이면 자기 의지만으로는 좀처럼 끊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낯 뜨거운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신문 끊기가 마누라와 이혼하기보다 더 어렵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사실 그 난이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신문 끊기의 어려움을 한번쯤 겪었을 것이다.

그 끝없는 ‘마약 전쟁’이 끝내는, 1등을 따라잡으려고 ‘금품 공세’를 벌인 재벌 신문과 2등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려는 신문 재벌이 신문 판촉을 둘러싸고 살인극을 벌이게 만들었다. 그것도 이 땅에 언론이 들어온 지 백년을 기념하는 해에 이런 살인극이 벌어졌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같은 비극은 지난 5월에 한국기자협회 등이 광고주협회가 전국 9천4백59명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문 구독 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했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 조사 결과는 기관 구독·단체 구독·가판 부수를 뺀 만명에 가까운 가정 구독 독자를 대상으로 한 첫 대규모 조사(95% 신뢰도에 표본 오차 ±1%)라는 점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각 신문사의 신문 구독률과 무가지 현황 등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순위에서 처진 일부 신문사들이 이를 공개한 것에 크게 반발하는 바람에 그에 관한 보도는 ‘없었던 일’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신문사들의 사활이 걸린 개별 순위 공개와는 상관없이, 구독 실태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중요한 현상은, 돈을 주고 보는 10개 전국지의 판도(유가지 기준)가 ‘3강 3중 4약’으로 굳어졌고, 덩지 큰 4대 신문의 시장 점유율(매출액 기준)이 전체 신문 시장의 4분의 3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점 현상이 갈수록 더 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조짐은 다양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삼는 언론이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지배됨을 정당화해 준다는 점에서 분명히 위험스런 징후이다.

독자 우롱하는 언론의 ‘자사 이기주의’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살인극을, 일부 신문들이 ‘특정 신문 죽이기’의 호기로 이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일부 신문 재벌은 신문 판촉 살인 사건 이후 1주일 내내 ‘신문 시장에 혼란과 왜곡을 초래한’ 특정 신문과 그 모기업을 고발하는 기사로 지면을 도배질하고 있다.

이같은 부끄러운 도배질은 겉으로는 늘 언론이 사회의 공기라고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사유물로 인식하는 언론사주의 고질에서 말미암은 것이지만, 독자의 처지에서 볼 때는 알 권리를 유린하고 사태의 본질에서 벗어난 ‘자사 이기주의’를 일삼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그것은 일부 신문 재벌이 ‘3강’ 축에 못 끼는 다른 재벌 언론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안하면서 특정 재벌 언론과 그 모기업만 물어뜯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같은 편’을 도움 직도 한 다른 재벌 언론들은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납작 엎드린 채 눈치만 살피는 ‘안지부동’ 자세를 취하고 있고, 재벌 신문도 신문 재벌도 아닌 ‘국민주 신문’만 유일하게 온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희화적인 양상’은 언론에 대한 족벌 지배가 기업에 대한 족벌 지배보다도 훨씬 더 위험함을 새삼 실감케 해준다. 비록 대부분의 언론사가 그 소유와 운영이 어떻든 ‘공적 기관’으로 행세하며 누리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더더욱 그렇다.

김영삼 대통령은 92년 14대 총선에서 한 재벌 총수가 당을 만들자 “돈과 명예를 함께 쥐려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쳐 놓고야 말겠다”라고 호언했다. 언론 자유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지만, 지금 언론은 정부가 나서서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리만큼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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